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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Apr 11. 2024

어느 방사선사의 다정한 안부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류귀복

사람이 궁금해서 책을 읽기는 처음이다. 아뿔싸. 아직 전자책이 없다. 덕분에 책값의 두 배가 넘는 배송료를 지불하고 알라딘에서 종이책을 구입했다. 영국 생활 10년 동안 애들 때문에 주문한기탄수학 이래 두 번째 일이었다.   


저자가 브런치 작가다. 지난해 말, 혜성처럼 나타나 개성 넘치는 글 28개만으로도 구독자 2,300명을 넘긴 그는 브런치 인기 작가다. 필명은 천재작가. 그는 소통의 달인이다. 나 역시 끝없이 이어지던 댓글놀이를 통해 그와 가까워졌고 결국 궁금증이 몰려왔다. 그는 누구인가?! 

 

작가에게는 여러 포지션이 있다. 1) 강남 가톨릭성모병원 치과에서 방사선사로 일하는 직업인이자 2) 강직성 척추염을 앓는 환자이며 3) 한국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기도 하고 4) 딸과 아내를 사랑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그가 쓴 에세이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에는 각각의 역할에 맞는 이야기가 유쾌한 언어로 소복이 담겨 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큰 건 나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간다는 점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치과 방사선과의 시선을 알게 된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지금은 제네바 선언이라고 함)를 하고 간호사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 방사선사는 아무런 선서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신 '방사선 피폭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감소시킨다'는 ALARA 원칙을 현장에서 지키려 노력한다고. 


치과 갈 때마다 입안에 넓적한 판을 고 찍는 엑스레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ALARA 원칙을 읽으며 그들의 직업윤리를 엿보고 있자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삶이 다가왔다. 


책장을 넘기기 전 가장 궁금한 건 이거였다. 강직성 척추염이 있는 환자로서의 작가. 나 역시 루푸스라는 난치성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데다가 한국에 살 때까지는 강남 성모병원 류머티즘내과를 다녔다. 우연히도 같은 병원, 같은 진료과를 다녀야 하는 작가가 통증을 어떻게 이기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대학병원 주사실에서 몸에 주삿바늘을 찌르고 그것도 부족하여 진통제와 다른 치료까지 받아야 겨우 잠잠해지는 고통 앞에 그가 선택한 건 원망이 아니라 감사였다. 병원에 근무한 덕분에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치료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음에 그는 감사했다. 


그리고는 책 곳곳에 자신의 질병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가볍게 언급할 뿐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그 점이 포인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평생 치료받으며 살아야 할 환자라 해도 아픈 일상보다 즐겁고 신나는 일이 더 많음을, 즐겨야 할 오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이 이런 순간에 나오는 것 같다. 


마지막에 너무 예쁜 장면이 나온다. 거실에서 6살 난 딸이 기도를 어떻게 하냐고 아빠에게 물었단다. 두 손바닥을 맞대어하는 거라 알려주니 딸은 고사리 손을 모아 창밖을 보며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다음 구절이 책 속에 이어진다. 


"무슨 기도했어?"하고 물으니
"달을 매일 보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단다.
달을 매일 보는 것,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저녁을 맞이하는 것.
어린 딸은 아빠와 다른 듯 같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 구절 덕분에 나의 평범한 오늘이 특별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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