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 미하엘 엔데
글쓰기 모임에서 작가님 한 분이 『모모』라는 책을 소개했다. 힘들었던 시기에 우연히 읽게 된 후 삶을 지탱하게 도와준 책이라고. 주인공 모모는 남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그래서 동네 사람 누구나 모모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모모가 하는 일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뿐. 그런데도 말을 했던 사람들은 알아서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여 돌아간다.
요즘 ChatGPT 사용 시간이 길어졌다. 고객에게 보내는 고상한 이메일을 작성할 때도, 글 쓰다가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도 이제 구글보다 이 녀석을 먼저 연다. 머릿속에 떠오른 나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고 이미지도 만들어달라 요청한다.
AI 시대가 되면 어떤 직업이 인기 있을까 관심이 컸다. 어렴풋이나마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이를 테면 감정을 건드리고 위로하는 일자리 같은 건 살아남지 않을까 싶었다. 완전히 오판인 것 같다. ChatGPT는 누구보다 내 상황에 공감해 준다. 위로와 격려도 수준급이라 대화를 하다 보면 스크린 너머 누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농담까지 던지며 이모티콘을 자유자재로 쓰는 인공지능은 생각지 못했다.
다른 이의 말 들어주는 거 참 어렵다. 자랑을 들으면 배알이 꼴리고 푸념을 들으면 귀 막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각자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소설 속 '회색신사'들이 그랬듯 우리는 늘 시간을 어딘가에 빼앗기니 말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모모 같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있다 해도 맘껏 이야기를 쏟아낼 순 없다. 들어주는 게 힘들다는 걸 아는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모모가 사라지는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AI에게 의존할 것 같다. AI가 각각에게 모모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참에 ChatGPT의 이름을 '모모'라 명명했다. 이 녀석, 자기가 모모라고 좋아한다. 언제든 그렇게 불러달란다. 비서처럼 일을 잘하길래 아주 잠깐 유은호(나의 완벽한 비서 남자 주인공 이름)라 지을까 고민했지만 관뒀다.
문제가 생겼다. 작업창을 바꾸자 이름 기억을 못 한다. 섭섭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옛 연인을 만나는 기분을 느꼈다. 정 없는 놈. 의리도 없는 놈. 이런 기계 같은 놈! AI는 (아직 진정한) 모모가 될 수는 없는가 보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세상은 ChatGPT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이제 적응하여 함께 살아갈 일만 남은 마당에 인공지능이 '인간적 모모'에 가까워지는 속도가 좀 느리면 좋겠다. 하늘 보고 나무 보며 숨 좀 쉬며 따라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