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밀 Jan 15. 2023

2022년을 보내며


 지나온 한 해를 놓고 보며 좋은 해인지 나쁜 해였는지 따지는 것은 사칙연산처럼 딱 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겪은 일들이 양수인지 음수인지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단정적 정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2022년은 참 좋은 해였다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비교해 보면 좋은 일의 크기가 더 크다고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명확하게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서울과 멀지 않은 어느 도시에서 2022년 새해를 맞이했다. 온전히 나의 선택의 결과였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은 어느 사분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나아감이 진보인지 아니면 표류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공허한 마음이 생겨날 때면 떠나온 곳이 문득 그립기는 했지만, 이렇게 떠내려가기로 했으니 길을 따라 계속 가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마냥 착잡한 마음만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분명했던 삶이다. 가고 싶은 서울에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었고, 덕분에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맘껏 만날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괴로움이 지나치게 커져서 즐거움들을 다 합친 것들이 역전당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이 삶을 지속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혹은 이미 접어들어버린 길이기 때문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길을 잘못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단순히 유턴을 해서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가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되돌아가는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고, 2022년의 절반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쁜 쪽으로는, 서울이 심심하다고 해서 갈 수 없는 거리에 놓였다. 뭐가 없어도 너무 없는 남쪽 끝에서 근무하게 됐다.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서 할 것이 없다고 서울로 놀러 가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살며 주말이면 그래도 있을 것들은 있는 지방 광역시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됐다. 서울로 가고 싶어서 경기도로 향했는데, 이제는 서울도 경기도도 쉽사리 갈 수 없는 삶을 살게 됐다. 좋은 쪽으로는, 더는 표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게 되었다. 서울을 동경하며 경기도권을 배회하는 삶은 막막한 것이었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서울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면 차라리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을 텐데, 서울 근교의 도시로 갈 수 있다는 확실한 기약도 없이 고생스러운 몇 년을 견디는 것은 너무 막막한 일이었다. 태어난 고향도, 마음의 고향도 아닌 경기도에서 고생을 버텨낼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향인 광역시에서 근무할 기회를 엿보며 오지 근무를 견뎌내는 것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어디에 어떻게 정착을 해야 할지 조금씩 형태가 잡혀가면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안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2022년을 지나오며 얻은 교훈은 잘못 내린 선택을 뒤집는 것은 해볼 만한 시도라는 것, 기회비용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소 결과론적인 결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역시 단편적일 수 밖에는 없는 일이다. 요새 만나는 타인들은 내 결단력이 부럽다는 말을 건네온다. 남들이 건네오는 결과론적인 격려들 속에서, 남이 보기에도 내 삶이 잘 풀린 모양이구나 생각할 뿐이다. 순풍을 타고, 2023년을 좋은 해로 만들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 없는 사택에 살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