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달 심리상담
"우리 부모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부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청년들을 만납니다. 물론 학대나 방치를 한 부모에 대한 원망을 충분히 털어놓아야 할 때도 필요합니다. 부모가 너무 원망스러울 때 내 부모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영화 <열세 살 수아>의 시작입니다.
수아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다가 유명가수 윤설영이 자신의 친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아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고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만 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은 커져서 가수 윤설영을 찾아 가출합니다. 13세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춘기의 시작을 알립니다.
내 옆에 있는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 고귀한 혈통의 진짜 부모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자신의 혈통이 바뀌기를 원하는 것을 ‘가족 로맨스’라고 합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하는 대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는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이 진짜 부모였으면 좋겠다고 바랬습니다. 그녀가 부모가 된다면 유치원도 가고 피아노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견 배우로 활약하는 그 연예인이 나오면 지금도 그때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드라마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 또한 출생의 비밀입니다.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가난과 못된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핏줄을 찾게 되는데 좋은 성품의 부유한 친부모를 만납니다. 이후 행복한 결말이 이루어집니다. 출생의 비밀이 풀리면 주인공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 ‘가족 로맨스’가 사람들 마음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를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꾸는 마술적인 기대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황금빛 로맨스'는 출생의 비밀로 부모가 바뀌어도 또 다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도 했습니다.
결혼연령이 늦어지다 보니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와 일로 방청소와 빨래 등은 어머니에게 미루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소한 일로 나이 든 부모와 부딪히는 경우는 잦아집니다.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저한테 그러려면 집을 나가라고 했어요.”
“제가 이렇게 눈치 보고 사는 게 우리 아버지 때문인 거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내 삶은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 든든한 지원을 받는 주변 사람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것 같고 부모에 대한 원망을 커져만 갑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세금을 떼고 아울러 저번 달 카드 값을 내고 나면 월급통장은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 수중에 남는 것도 없습니다. 부모를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살림도구를 장만하는 것, 공과금을 정리하는 것, 집을 알아보는 것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용기를 내서 독립하려고 여러 집을 알아봤지만 작은 방 한 칸의 월세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생각도 없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귀찮고, 혼자 살아갈 자신은 더더욱 없어집니다. 그러니 부모가 변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부모의 행동을 바꿔보려고 노력도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도 받으려고 합니다. 그게 뜻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모습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녀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부모는 지금껏 많은 희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녀의 비난 섞인 말들에 화만 올라옵니다. 때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녀가 부모에 대한 원망이 다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른이 된 이상 ‘쉬운 선택’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부모의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들을 들어가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반면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경제적인 어려움과 물리적인 불편을 감소하고 독립하면 됩니다. 상대가 변화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가해자-피해자 논리로 부모-자녀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면, 몸은 어른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를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돌봐주어야 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이 마치 모든 원인을 ‘과거의 상처’를 탐색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입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불평불만이 커져 간다면 독립해야 할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고통스럽고 아팠던 것은 무엇인지 출생의 비밀이 있어 새로운 부모가 생긴다면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열세 살 수아>에서 가수 윤설영이 친엄마이기로 생각하고 찾아나서는 모험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출생의 비밀도 없었고 수아의 ‘진짜 부모’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수아는 죽은 아빠가 엄마의 이름을 가수 윤설영의 이름으로 적었던것을 오해했던 것입니다. 수아가 집을 떠나서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왔을 때 엄마의 가게는 힘든 상황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영 분식’이라는 초라한 간판의 낡은 노란 버스에서 엄마는 분식집을 시작합니다.
수아의 꿈에 노란버스가 움직이고 수아는 죽은 아버지를 만나 작별합니다. 이 애도 작업을 통해서 꿈에서 깬 수아는 가수 윤설영이 친엄마일 것이라는 미련,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보냅니다.
수아처럼 부모에 대해 미해결 된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애도 작업을 통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움이 있다면 미워해도 됩니다. 상담을 받던 글로 쓰던 무엇이던 표현해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파도에 떠내려 보내야 할 것과 지금 여기에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부모의 삶은 그대로 인정하고 내 삶의 버스를 운전하고 나아가야 할 사람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2018. 마음 달 안정현 all rights reserved.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획의도를 알고 싶으신 분들은 1편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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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현은 14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두려움 너머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