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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18. 2023

삶은 엉덩이 체력전..

생산적으로 시간 쓰는 법에 대한 생각

역사에서 살아남은 예술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연과 자연광을 좋아하고

정신적 탐구를 숨쉬 듯하고

혼자 고독을 배부르게 씹어먹고

독한 술을 수혈하듯 마시고


그리고 무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인내와 집중력이 없는 예술가는 없는 듯하다.

딱히 결승선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바퀴가 굴러가 듯 계속 그리거나 써 내려간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보상과 결과가 딱히 없을지라도. 그래서 예술가들에게는 결과보다 과정만이 남아있다. 그 과정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 지문처럼 남아 작품들을 보다 보면 느껴진다.


파블로 피카소는 너무 많은 작업들을 해서 그의 작품들을 공부하면 숨이 찰 정도다. 마치 에베레스트 산을 정상까지 오르려고 하는 느낌이랄까? 천재라는 신화적인 단어에 그의 노력의 가치가 가려지듯 보이지만 그는 천재가 아니라 열정적인 예술 노동자였다. 피카소는 올빼미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밤샘 작업을 했다. 하루에 작업 세션을 두 파트로 나누어서 최대한 흐름을 깨지 않게 하여 하루 최대 14시간 작업을 했다.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작업 후 짧게 쉬는 시간을 가지며 저녁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후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작업을 이어 나간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잘리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여 온전히 작업을 위해 만들고 몰두한다.


초현실주의 작가 호안 미로는 매일의 루틴을 종교의식처럼 지켰다. 그가 어린 시절 느꼈던 극심한 우울증이 다시 찾아올까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며 살았지만 자신의 작업 시간은 철저하게 사수하였다. 매일 새벽 6시에 기상해 간단히 목욕을 하고 가벼운 아침,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5시간 정도를 쉼 없이 작업을 하고 작업실을 떠나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운동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루틴이었다. 스웨덴 체조, 줄넘기, 복싱, 수영, 조깅 등 다양한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운동은 그에게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인 우울감을 애초에 차단하는 예방법이었다. 꽤나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꽃이 파는 계절에는 붕 떠 있는 마음을 잡고 자리에 착석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럴 때는 그나마 손을 쓰는 일을 하면 좀 나아진다. 예전에 갤러리에서 일을 할 때 생각이 난다. 머리 쓰는 일이 지겹고 장시간 앉아있으면 "다 같이 "가내수공업" 할까요?"라는 팀장의 말에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 채로 초대장을 넣는 노동을 시작했다. 인쇄 업체에 디자인을 맡겼던 봉투와 초대장이 갤러리로 배송이 오면 초대장을 봉투에 넣어야 한다. 그 작업까지는 추가 인건비가 발생하니, 월급 받는 큐레이터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서서 단순작업을 하고 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고 싶어 진다. 나름 일의 능률을 올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단순 육체노동은 집중을 해서 피로했던 뇌를 스트레칭해주는 것 같았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성인이 된 지금도 너무나 공감이 간다. 지금은 학생의 신분을 벗어났기에, 누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건 아니나, 더 많은 양질의 지식을 쌓아야 좋은 강의를 뽑아낼 수 있기에 지속적으로 읽고 쓰는 행위를 반복한다. 나도 모르게 3시간이 훌쩍 그냥 지나간 적도 많다. 엉덩이가 저리면 그제야 알람처럼 일어난다. 엉덩이가 네모가 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럴 땐 잠시 일어나 스쿼트를 하던지, 뒷발차기를 하며 온몸을 늘린다.


가끔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할 때 티 한 잔을 머그 컵에 우려낸다.

티를 우린다는 것은 내가 한 위치에 닻을 내려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의식적 행위다. 얼마 전 만난 3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지인은 따듯한 티를 제대로 마셔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었다. 정말 바쁘고 엉덩이를 붙일 수 없으면 따듯한 티를 마시는 것은 사치다. 티의 맛도 잘 느낄 수가 없다. 그만큼 따듯한 티를 마신 다는 건 내가 집중을 하겠다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더불어 차의 카테킨 성분은 사람의 기분을 차분하게 해 주고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해 준단다. 차 한잔이 내어 주는 편안함이 효율성과 함께 몰두하게 만든다.



이제는 무거운 엉덩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육체를 단련해야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뭔가 하기 위해 한 곳에 오랫동안 앉으려면 허리를 포함한 체력전이란 걸 느낀다. 작년 여름 코로나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 완전히 셧 다운된 나의 신체 리듬을 규칙적인 요가를 통해 천천히 올렸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효율성 있게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듯하다. 이 전에는 뜬 구름 같은 생각에 앉아있어도 멍하니 컴퓨터를 쳐다보거나,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이래저래 둘러보다 또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아 오늘은 꽤나 시간들을 차곡차곡 잘 썼어.'라는 느낌과 함께 하루의 마무리가 뿌듯한 날들이 많아진다. '참 잘했다'라는 말과 함께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쳐준다. 꽤나 자존감이 높아진다.










레퍼런스 글:


Abigail Cain, The Morning Routines of Famous Artists, from Andy Warhol to Louis Bourgeois, Artsy


Aryan Khanna, Surprising Facts about Pablo Picasso : Everything You Need To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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