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연재 Mar 19. 2022

YES, 요코 오노

행위로 미술과 일상을 잇는 일본 여성작가

 “Half-a-Memory” 전시장에 있는 요코 오노



나는 자몽.      

 

요코 오노는 자신의 작품보다 존 레논의 와이프, 비틀스를 해체시킨 '마녀'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출생 여성 아티스트다. 그녀는 자신을 과일에 비유했는데, 많은 과일들 중 자신을 자몽이라고 불렀다.

자몽이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일반 책이기보다는 개념 미술 작품이다.

왜 많고 많은 과일 중에 자신을 자몽 같은 사람이라고 했을까?

자몽은 1900년대에는 더 생소한 과일이었다. 자몽은 귤, 오렌지처럼 시큼하며 달거나 레몬이나 라임처럼 매우 시큼하지 않은 이도 저도 아닌 과일이었다. 오히려 쌉쌀한 쓴 맛이 더 강하고 크기만 크다. 자몽처럼 사람들이 자주 찾지도 않고 이도 저도 아닌 맛처럼 자신의 존재가 어디든 속하지 않은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애매한 포지션을 가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리저리 유동적으로 여러 색을 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I'm used to people not liking my stuff'
“나는 사람들이 내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
-Yoko Ono


        요코 오노는 레몬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니니 어디에 서 있든 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활동지는 대부분 영국, 미국 같은 서양권 나라였으며 연인이 워낙에 유명한 인물, 비틀스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었던 존 레논이었기 때문에 항상 이목을 끌었다. 서양과 동양 문화 그 사이 어딘가에 항상 존재해 왔으며 요코 오노가 보여주는 작업 활동도 미술 작품이라고 인정받기에는 애매한 부분들이 많았다. 존 레논은 자신의 부인이 '유명한 아티스트지만 사실 뭘 하는지 잘 모른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요코 오노의 대표작은 <Cut piece> <Bed in for Peace> <Yes> <못 박기 회화> 등이 있다.



플럭서스 (Fluxus)       


아티스트로써 요코 오노의 존재가 불안정한 이유는 플럭서스 운동에 있다. 플럭서스 (Fluxus)는 flux라는 라틴어에서 출발하며 '흐름'과 '끊임없는 변화와 움직임'을 뜻한다. 따라서 정체되어 있는 전통적 형식주의 예술 형태를 거부했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에 국제적으로 전위 예술가들에 의해 형성된 집단이며 다다이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 아티스트로는 백남준, 요세프 보이스, 존 케이지, 조지 마치우나스 등이 있다. 기존의 예술과 문화에 반대하는 운동이며 순수 미술에만 국한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가, 시인, 무용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예술 문화 방면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이었다. 미적인 외관과 형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요셉 보이스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판에 박힌 미술의 정의를 혼란시켜 우리 일상의 경계와 맞닿았다 떨어지게 하는 유동적 운동이다. 이들의 예술 작품들은 상당히 즉흥적이기도 하고 유머러스하며 예측 불가하다. 더 이상 예술은 정적으로 고상하게 앉아 있는 형태나 미학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는 유머러스한 매체가 된다.

어떤 하나의 목적성, 서술적 기법, 방법이 부재하다는 특징 때문에 요코 오노의 작품은 생소한 부분들이 많다. 더군다나 서양 미술권에서 아시아 여성의 활동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요코 오노와 레논의 관계 (당시 레논은 혼인 관계에 있었음)는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기 때문에 요코 오노가 아티스트로써 좋은 시선과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





컷 피스 Cut Piece

Cut Piece, 1964

1964월 7월 20일 요코 오노가 31세에 교토 야마이치 콘서트 홀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요코 오노는 검은색 긴팔 수트를 입고 무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자신의 앞에 가위 하나를 놓고 관객들을 기다린다.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원하는 만큼 오노의 옷을 잘라서 천 조각을 가지고 내려오면 된다는 가이드를 받게 된다. 한명씩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오코 오노의 옷을 서슴없이 자른다. 어떤 이들은 신체가 손상될까 봐 조심스럽게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잔인한 느낌이 들었다고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남는 것은 벌거 벗겨진 오노의 모습이다. 


오노는 관람자가 예술 작품의 일부로 참여하며 만들어 나가는 주체적인 자리를 내준다. 참여자들이 옷의 천 조각을 하나씩 가져가며 오노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전시라는 특성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이 것이 실제의 상태라 생각한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관음증, 마조히즘, 사디즘, 피해자, 공격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을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이 공간 내에서는 나약한 피해자, 그것을 단순 관망하는 사람들과 직접 해를 가하는 가해자의 모든 상황들을 제 3자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을 보고 참지 못하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 여성, 어린아이, 장애인 등 약자의 육체에 대한 나약함을 실질 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또한 책임감 없이 바라보는 것 역시도 특정 대상을 파괴하거나 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컷 피스는 도쿄, 뉴욕, 런던, 파리에서 순회 퍼포먼스로 이어져 전 세계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행위 예술 작품이다.



Bed-In (1969)



<Bed-In>라는 작품은 세계 평화를 위한 캠페인 속성을 띄는 퍼포먼스 아트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와 평화란 작은 데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요코 오노와 존 레논이 결혼 후 허니문을 가는데, 둘이만 가지 않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들이 보낸 카드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힐튼호텔과 702호 룸이라는 정보가 기재되어있었다. 셀럽들의 허니문을 밀착 취재할 수 있겠다는 특종감에 부푼 마음을 안고 온 기자들은 당황한다. 이들은 호텔 방에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최대되었으며 이들의 카메라에 담는 것은 침대 위에서 파자마 차림을 한 레논과 요코의 평화 시위였기 때문이다. 이 둘은 침대 머리맡에 큰 종이로 "Hair Peace", "Bed Peace"라고 붙이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1969년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며 


이 둘이 만든 평화의 상징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길 바랬다. 오노가 침대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드러나는 곳이며 사적인 장소다. 이러한 개인적인 장소부터 평화가 시작되어야 나비효과로 전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 둘은 파자마를 입고 이를 닦고 아침을 먹는 것부터 자신들의 성취라고 말하며, 인류의 실제 일은 모두 집, 특히 내밀한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작은 행위가 성공적인 바깥 일로 이끈다는 가화만사성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을 자주 잊어버린다.

한 기자와 전화통화로 요코 오노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괴물과 싸우지 말고, 당신 자신과 싸우고 당신의 무지와 싸워라!
-Yoko Ono


요코 오노는 인간들이 괴물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비난하며, 사소함에서 찾아가는 평화를 모르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요코 오노는 그녀 자체가 플럭서스다.






작가의 이전글 심각하게 이해할 필요도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