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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소설 쓰는 남자
Apr 12. 2021
“혹시 학력이 어찌 되십니까?”
당돌한 질문이었다. 고수부지 산책 중에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 불쑥 다가온 사내. 얘기 좀 나누자더니 다짜고짜 하는 일을 묻고는 이런 질문을 던진 거였다. 심문당하는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짜증이 나려는데, 심문의 칼끝이 반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습니다.”
그래서 어쨌단 건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뜨악한 기분으로 저만치에서 폭포를 쏟고 있는 수중보를 바라보았다. 처음 다가왔을 땐 도인인 줄 알았다. [혹시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그럼 이렇게 대답해 주려 했다. [도 말고 돈에 관심 있는데요, 하하!]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도인이 아니었다. 울산에 있는 OO자동차 부속 공장 근무자였다.
“2001년 10월 15일 입사해 19년째 근속했습니다. 지금은 병가를 내서 쉬는 중인데, 얼마 전에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거 참 위로의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금세 화제가 바뀌었다.
“불알친구가 셋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서울대를 나와 치과의사를 하고, 고대 나온 친구는 세종 청사에 다니고, 성대 나온 친구는 사업을 합니다. 못 본 지 오래됐는데 다들 바빠선지 전화해도 잘 받지 않습니다.”
“몹쓸 친구들이네요.”
바빠서가 아니라 무시해서일 터였다. 코를 찡긋해 보인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울산에 있는 OO자동차 부속 공장 근무잡니다. 2001년 10월 15일 입사해 19년째 근속 중이고…….”
“저기요, 그건 좀 전에 했던 얘긴데요.”
내 지적에 사내는 다시 코를 찡긋했다. 눈빛이 흔들리는 걸로 봐선 당황한 듯했다.
“저, 저한텐 불알친구가 셋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것도 얘기했고요.”
연이은 지적에 역시나 코 찡긋, 눈빛 흔들. 게다가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고개까지 푹. 바로 그때 뒤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번쩍 고개를 든 사내는 앞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사내가 눈에서 멀어지는 동안 사이렌 소리도 귀에서 멀어졌다. 어딘가 망가지거나 모자란 사람이라 생각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수중보 아래쪽에 자리한, 물이 닿지 않는 돌밭에 죽은 연어 두 마리가 보였다. 본류에서 지류를 잘못 타고 올라온 모양인데, 한 마리는 거의 뼈만 남은 상태였고, 다른 한 마리는 도둑고양이가 코를 박고 있었다. 담배를 다 태운 나는 앞에 놓인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밭에 탁 부딪힌 돌멩이의 서슬에 도둑고양이가 놀라서 달아나는 꼴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숙소인 고시텔 쪽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