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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소설 쓰는 남자
Apr 19. 2021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날 자정 무렵. 잠이 안 오고 담배 생각은 뭉게쳐서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앞 화단 벤치에 가서 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누군가 다가와 알은체했다. 옆집 남자였다.
느지막이 퇴근했을 때 엘리베이터 앞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모른 척하거나 어색하게 목인사만 하고 마는 관계. 그런데도 이렇게 접근해 온 이유가 담배 때문인가 싶어서 한 대 권했다. 남자는 씩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 왜? 스윽 옆자리에 앉기까지 한 남자는 조용히 앞만 바라보았다. 그런 남자를 쳐다보다가 역시나 앞을 보면서 한 모금을 빨았다.
“어젠 종일 비가 왔다고 들었는데, 공항에서 보니 하늘이 맑더군요.”
뻘쭘한 분위기를 날씨 얘기로 밀어냈다. 어디 멀리 다녀왔냐고 물을 법한 대목인데, 남자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어제 북경 날씨는 어땠나요?”
불시의 기습. 필시 아내에게서 옆집 여자를 거쳐 그 남편에게로 전달되었을 정보에다 북경의 날씨는 맑았다는 소식과 천안문 광장이며 자금성을 둘러본 소감 따위를 보태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부러움을 표시했다.
“전 신혼여행도 제주도라서…….”
나라 밖 구경을 못 해봤다, 그저 나라 안에서 먹고사느라 늘 바빴다고 푸념했다. 전에 직장 다닐 때라도, 아님 명퇴 후에 차린 돈가스 가게로 재미를 볼 때라도 짬을 내서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다녀오시죠.”
“그럼 좋겠지만…… 형편이 허락하질 않네요.”
지금은 가게로 재미를 못 보는 모양이었다. 어쩜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세속의 금언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을 남자에게 해준 말은 많이 힘들겠다는 영양가 없는 위로뿐이었다.
“아내한테 미안하죠. 그런 선택을 안 했어야 했는데…….”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아내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나 덕담은 없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양해를 구한 뒤 위로 올라왔다. 옆집 생각에 얼마간 뒤척이다가 잠든 나는 아침 식탁에서 간밤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이가, 잠이 덜 깼나? 옆집 남자…… 죽었어, 당신 출장 간 그 다음날 밤에. 투신자살. 앰뷸런스 오고, 사람들 웅성대고, 옆집 여잔 까무러치고, 난리가 났었는데.”
출장 간 그 다음날 밤과 옆집 남자를 만난 간밤 사이, 9일이라는 시간의 낙차를 두고서 떨어져 내린 숟가락이 식탁 아래서 쨍그랑,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