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되었다
요즘처럼 예쁘게 은행잎이 익어가고 날씨도 좋으면 웬만하면 집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 묻혀 버릴 것 같아서이다. 그러던 내가 친구를 살살 꼬셔서 군산행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에서 막히기 시작한 도로는 논산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설레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얼마 만에 그의 목소를 실제로 듣는 것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컨디션 조절차 호텔에서 낮잠까지 함숨 잔 후에야 군산예술에전당 대공연장을 찾아갔다. 그를 만나기 위해 들어선 공연장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머리숱이 얼마 없는 아저씨들과 곱게 화장한 아줌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사람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가능하면 이런 곳에 오지 않는데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내가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통로 쪽 자리도 아닌 사람들 속에 끼어 있는 한가운데 자리임에도 너무 신이 나 숨 같은 것은 쉬지 않아도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이 꺼지고 조명 때문에 안개가 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드디어 그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나는 소년으로 돌아갔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
요즘에야 같이 나이를 먹어가지만 이문세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이직 풋풋한 젊은 신인 가수였고 난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며 라디오에 빠져들기 시작한 소년이었다. 아저씨가 진행하던 ' 별이 빛나는 밤에'를 친구집에서 들은 후로 태어나 처음으로 라디오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졸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얻어낸 라디오는 수년간 내 방의 가장 큰 보물이 되었다.
공연장 멀리 보이는 그는 생각보다 늙어 보이지 않았다. (환갑이 지나신 걸로 안다) 아니 젊어 보였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리들은 소년, 소녀가 되어 신나게 놀았다.
한참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 친구도 나처럼 소년 시절이 생각났나 보다.
"반가워요 아저씨"
좀 징그러운 듯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수십년 전에 정립된 우리의 관계이다.
아저씨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