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미 Jan 10. 2024

2023 글쓰기 결산 - 2

2.3.4분기에 있었던 일들

 2023년 글쓰기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감정이 ‘불안’이었던 것 같다. 공연이 올라갔고, 책이 나오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걸 해내는 시간은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했다. 왜 그랬나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게 온 어떤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빡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참으로 나를 몰아붙인 한 해였다. 


 1분기가 지나고 2분기가 시작되며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공연이 올라가고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동물원> 수정을 했다. 초고는 2월 말에 끝냈었고, 공연을 위해 수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여름 동물원>이라는 제목으로 시즌3까지 거치긴 했지만 공연한 지 꽤 시간이 흘렀고 손 볼 곳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그리고 공연장 크기가 대극장 사이즈에서 중극장으로 옮기며 출연진의 수를 줄여야 하는 물리적인 문제가 있었다. 더불어 지난 공연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미 전 작품은 꼴도 보기 싫은 상황이기도 해서 이왕 다시 하는 거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졌다. 장소를 대학로로 옮긴 만큼 기존 타깃이었던 7080 관객들과 더불어 동물원이나 김광석을 모르는 현재 대학로의 관객들에게도 몰라도 모르는 대로 재미있는 극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 큰 틀은 가져가되 친구들 간의 우정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추억은 그대로두고자 했다. 이 수정방향에 따라 작품을 수정했다. 


 <다시, 동물원>이 올라가고 있는 시간 동안은 <파터란트>의 리딩 공연을 준비했다. 올 초. 작곡가님, 연출님과 함께 <창의인재사업화지원> 사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021년 한문위 대본 공모에서 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리딩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다. 이때의 나의 미음은 공연까지 안 가도 좋으니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또 시작하면 대충이 잘 안 되는 나는 최선을 다해버렸고, 컴퍼니가 아닌 상태에서 리딩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몸소 배우며 9월 리딩 공연을 끝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리딩 공연을 거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모두가 의견이 다르고, 모두의 조언이 모두 옳지 않으며 그러하기에 내가 확신이 없다면 길을 잃을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기는 어렵다는 걸, 특히 역사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하기에 오해를 살 수도,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 시간을 보내며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을 경험했고, 내가 뮤지컬 한정 어떤 글을 잘 쓰는지 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내 소중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고생시키고 말았지만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앞으로는 이런 식의 리딩공연은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9월 이후에는 뮤지컬 <포인트 니모>를 혼자 쓰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창작자들과 회사들이 작품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사전제작 파트에 지원서를 넣었었다. 작곡가가 작품을 쓰고, 작품을 쓰는데 필요한 전문가 자문을 받는 것에 지원금을 쓰기로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작년부터 은은하게 어떻게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만 하는 상반기를 보냈으니 하반기에는 써야 할 터였다. 그렇게 대본에만 열중하고 싶었는데... 지원금을 받아서 쓰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다. 회사가 아닌 개인 창작자 입장에서 해내기에는 물어볼 곳도 부족하고, 시원하게 답변해주지도 않고, 너무나 복잡했다. 이 나라 도움을 통해 지원금을 내려받는 것에서부터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은행을 3번 방문했으니까. 게다가 맥에서는 돌아가지 않는 이 나라 도움은 도움은커녕 나에게 고난과 역경을 선사했다. 어찌어찌 지원금을 프로그램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그다음이 더 문제였다. 세금 신고. 기획사에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기획 업무를 하고 있을 뿐 재정을 하는 담당자는 따로 있거나 회계사에게 맡기는 실정이라 세금 신고 과정을 시원하게 알려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어찌어찌 해내고 보니 그렇게 복잡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이걸 알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 사업은 아마도 개인이 아닌 회사위주로 진행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문위원을 모시려고 해도 개인인 내가 발송한 공문은 효력이 없었기에 한문위에 문의를 해보아도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말 필요한 현업을 하시는 자문위원은 모시지도 못한 채 사업이 끝나버렸다. 작품을 쓰는 건 힘들지 않았는데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어려웠다. 내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닌 것 같더라고. 이러나저러나 덕분에 나는 <포인트 니모>의 초고를 손에 쥐었다. 앞으로 이 아이는 뭘로 키워볼까 찬찬히 생각해 봐야지.


 그리고 12월이 되었다. 여러 번 수정을 거치고 조판본을 확인한 끝에 <디어 마이 라이카>가 책으로 나왔다. 책이 나온 일이 올해 가장 기쁜 일이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마주하니 좀 쑥스러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마 올해 했던 모든 작업 중 가장 나 다운 나로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정신없는 2023년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한 이유는 가장 첫 번째로는 돈 문제였던 것 같다. 뭐든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사실상 노력한 것만큼 돈을 벌었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를 너무 소모하며 일을 한 것 같았다. 정작 지나고 나니 손에 잡히는 건 없는데 뭐 이리 애쓰며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뭐든 얼른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인가 되었냐 한다면 그것도 ‘아니요’다. 나는 왜 이렇게 초조한 걸까?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가야 하는 걸까 하는 피해의식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하지 않았다. 연말쯤 되니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나는 무엇인가 미션 클리어하듯 해내는 것에 중독된 사람 것처럼 일 했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하나씩 이루어지거나 좋은 기회로 다가올 때에도 크게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이뤄야 하는 그다음 목표가 바로 저기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 과정들을 즐길 수 없었다. 작년 12월 메모장에 이런 글이 있었다. 



마음속에 너무 간절한 바람이 아직 남아 있어서

틀림없이 행복한 이 순간에 마음껏, 온전히 행복하지 못한 내가 불쌍하고 서러웠다. 

내 자신에게 잘했다 수고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꿈을 넘쳐서 욕심이 되어버린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넓게 보며 시시각각 찾아오는 행복에 정직해지고 싶다. 




2023년 글쓰기를 정산하며 2024년엔 나를 증명하는데 열중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좀 여유롭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곱씹고 곱씹어서 종이위에 펼쳐놓고 싶어졌다. 글 쓰기 행위가 ‘증명’이 아닌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돈도 먹고살 만큼은 벌었으면 좋겠지만... 

이전 05화 글이라는 꿈을 처음 품던 순간, 그 씨앗을 심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