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도에 놀러 갔다 건져온 이야깃거리
10년 동안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대학생이던 시절. 친구와 둘이 겁도 없이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에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또 작은 배를 갈아타고 한참을 걸려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 섬에 있다는 모래 사구를 보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섬 민박을 알아볼 것도 없이 거의 유일하게 어촌계장님이 운영하시는 가정집 같은 민박이 전부였기 때문에 숙소 고민도 필요가 없었다. 그때 그 섬의 풍경이 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어촌계장님네에서 만들어 주셨던 식사가 엄청났던 걸로 기억한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너무 신선하고 푸짐하게 식탁에 올라왔었다.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톳을 말리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친구와 나는 오지랖을 떨어 그 옆에서 미역 포장하는 걸 돕고는 손을 거든 것보다 더 푸짐한 톳과 미역을 받아왔던 기억도 난다. 어촌계장님네에서 괘 걸어야 하는 거리에 섬의 다른 마을이 하나 더 있었는데 거기 마트가 유일하게 있다고 해서 친구랑 둘이 걸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었다. 그때 그 가게에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타지에서 온 우리가 말도 걸고 애교도 떨고 하니까 살갑게 반겨주셨었다. 그 마트에는 멸균된 팩으로 된 유우밖에 없었던 것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육지에 자주 나가질 못하니까 한번 가서 가져올 때 비교적 유통기한이 긴 멸균된 팩 유우를 가지고 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밤에는 챙겨간 화약으로 바닷가에서 작은 불꽃놀이를 했다. 저 멀리 고깃배의 불빛 몇 개와 하늘에 별 몇 없는 민가에서 나오는 빛. 그리고 우리의 불꽃이 빛의 전부였다. 그 밤에 바닷가 모래 사이에는 구멍이 뽕뽕 많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서 게들이 우르르 나와 달빛을 받으며 일제히 바다로 향하는 걸 봤다. 다음날 아침에는 어촌계장님을 따라 바구니를 들고 모시조개를 주으러 갔다. 주민들이 아니면 함부로 바다생물들을 잡거나 해서는 안 됐기에 어촌계장님을 따라나섰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시조개를 잡아 봤었다. 마을에는 예전에 있었던 초등학교의 흔적도 있었다. 그때 이미 폐교가 된 지 꽤 지나있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몇 장의 사진으로 그곳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이곳을 배경으로 내가 무엇인가 만들고 싶어질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는 폐교가 된 학교에 억지로 오게 된 신임교사와 학교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 화단에는 5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는 50년 된 배롱나무가 서 있고, 그 배롱나무에 매일 물을 주는 이 섬에서 나고 자라 교사로 부임하기도 했다가 은퇴 전까지는 교장을 지낸 60대의 섬의 어른을 떠올렸다.
이 이야기는 여러 번 무엇인가가 될 뻔했다. 글을 전공하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 극작 초빙실습 시간이 있었다. 이강백 선생님이 당시 수업을 맡고 계셨는데 우리 수업의 총인원이 5명은 매주 새로운 이야깃거리 사냥에 나섰다. 그 수업시간에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정확하게 어디까지 진행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최근에 다시 찾아보니 작품의 기획안이 메일에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꺼내본 이야기는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0년 전에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를 여전히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만들고 싶어지는 걸 보니 내가 이 이야기를 꽤나 오래 품어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때의 내 이야기는 기획안의 형태로 남아있을 뿐 대본은 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혼자 책상에 앉아 뮤지컬 대본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 시도였다. 이때는 연극이 될 뻔했던 첫 번째 시도보다 등장인물이 늘어나 있었다. 연극으로 생각했을 때는 주요 인물 네 명이 전부였지만 규모가 있는 뮤지컬이 만들고 싶었던 건지 특징 있는 동네 사람들 몇몇과 주인공인 10살 꼬마 여자아이의 친구들도 네 명이나 만들어져 있었다. 한 명 한 명 다 애정이 있어서 이름까지 붙여놓았더라. 이 대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트리트먼트를 써 놓고 그 트리트먼트를 바탕으로 전체분량에서 5분의 1쯤 대본으로 옮겨 놓았다. 모두가 그러하듯 마감이 있으면 끝까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딱 스스로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분량만을 써 놓고 손을 놓고 컴퓨터 하드 속에 묻어 버렸다.
그런데 올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았다. 단막 드라마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기뻤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보는 것만으로도 글을 잘 썼고 못 썼고의 문제와 다른 차원의 기쁨이 있었다. 이 이야기가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 가장 생소하고 어려운 장르인 드라마 대본이라는 형태로 처음으로 끝을 본 것이 즐거웠다. 이걸 해내느라 해가 바뀌어 있었지만 나는 2023년의 일이 덜 끝난 느낌이 들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2024년이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해내고 나니 이야기 속 10살 소녀처럼 한 뼘 크게 자란 느낌이 들었다. 해냈다!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언제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 여전히 그 고민은 유효하지만 나에겐 늘 또 다른 고민이 따라온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그릇에 담고 싶은가? 에 관한 문제다. 정말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이제 나는 공연이라는 그릇을 사용할 수도 있고, 책이라는 그릇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라는 그릇도 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꽤나 오랫동안 노력해 오고 있으니 언젠가 이것도 내 것이 되겠지. 예전에는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연 그릇에 쑤셔 넣어 보았는데 이제는 이 이야기가 어떤 그릇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내 10년 묵은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그릇에도 담아보고자 했고, 뮤지컬 그릇에 담아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드라마라라는 그릇에 담았다. 이 또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릇이 하나뿐이던 내가 여러 개의 그릇을 가지게 된 역사와 이 이야기의 역사가 일치하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하나의 이야기를 끝내면서 나의 2023년이 드디어 끝난 기분이 든다. 2024년은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잘하는 것으로.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기보다는 내 앞에 놓인 땅을 잘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든다. 그 스타트를 잘 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느리지만 정확한 방향으로 가면 된다. 2023년에는 그렇게 조바심이 나더니 올해는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행이다. 올해는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글도 쓰고 내 마음도 잘 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