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국어 선생님 소설가 정태규 선생님
책을 주문했다. 정태규 소설가의 <당신은 모를 것이다>라는 책이다. 집에 들인 책이 차가웠다. 겨울에 배송 오느라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는 책을 펼치기가 조금 두려웠다. 지금은 펼치지 못한 책을 앞에 두고 글을 쓴다.
1월 1일. 갑자기 선생님 이름이 떠올랐다. 거의 10년 가까이 떠올린 적 없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고등학생 때 국어를 가르쳐주셨던 스승님의 성함이었다. ‘정태규’ 선생님.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정태규 소설가’라고...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그 시절부터 소설가였다. 언젠가 오래전에도 선생님 성함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르고 흘러 1월 1일 날 선생님을 검색해 본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 이름 위에는 소설가, 전 교사라고 떴다. 틀림 없다.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내 국어 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아니었기에 나를 기억하고 계시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선생님이 당시에 ‘소설가’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낭만적인 이름에 매료되어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본 적 있는 선생님이 참 멋져보였다. 나는 0교시 수업이 너무 싫었지만 국어가 있는 날은 예외였다. 그날엔 제일 앞자리. 교탁 바로 앞에 앉아서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다가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며 커피믹스를 자주 마신다는 걸 알고 선생님 시간만 되면 교탁에 커피를 올려놓곤 했었다. 아마 고등학교 1.2. 학년 때였던 것 같다. 선생님은 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힘 있게 수업을 했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참 좋았다.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이 읽어주시던 김유정의 <봄봄>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우리에게 <봄봄>을 아주 실감 나게 낭독해 주셨다. 강원도 방언이 가득한 봄봄을 구연동화 읽듯이, 연기하듯이 너무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후에도 선생님 수업시간은 늘 즐거웠다.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업이 아니라 문학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조금씩 알려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지문으로 읽었던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내게는 그리움 같이 아련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건너오며 특히 좋아했던 최인훈의 <광장>이란 소설도 선생님 수업시간에 접하면서 참 좋아했었다. 선생님 덕분에 문학이 따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학생들을 대학 보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시기의 나는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시기였다. 꿈이 음악감독이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열심히 해오던 바이올린을 때려치우고 음악감독을 하려면 작곡과를 가야 한대서 학교 끝나면 레슨 받으러 뛰어다니던 나는 학교가 재미가 없었지만 선생님 수업시간만은 기다려졌다. 피아노를 치면서도, 화성학을 풀면서도, 수능 공부를 하면서도, 책은 읽었다. 다행히 아직 책은 질리지 않는 내 취미가 되었다. 남들은 따분하다고 읽지 않던 한국문학 단편선을 고등학교 시기에 거의 모조리 읽었고, 이 시기에 세계문학전집도 많이 읽었다. 내가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선생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했다.
2024년 1월 1일 접한 선생님의 소식은 2021년 10월 타계하셨다는 소식이었다. 10년 동안 루게릭병으로 투병하시다 63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기사에 나와 있었다. 나는 왜 한 번도 선생님을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몇 년 만 빨리 검색했으면 인사라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치료 때문에 서울에 거주하고 계셨다는 글을 보니 한번 더 가슴이 쿵 떨어졌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소식을 계속 찾아보았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책을 내시고 글을 쓰셨다. 유쾌하게 페이스북도 하셨던 모양이었다. 언젠가 읽은 <잠수종과 나비>라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눈 깜빡임으로 계속 글을 쓰셨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내 선생님이 되셨을 때는 막 소설가가 되신 직후였던 것 같다. 나이도 지금의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한 나이였던 것 같았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작품보단 국어교사로 사시던 시절 내가 있었고,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하면서 책도 내시고, 칼럼도 쓰시고 하셨단 걸 알게 되었다. 2009년부터는 부산 작가회의 회장직에 계시기도 하셨다고... 그 이후에도 거동이 힘들어지기 직전까지 선생님 겸 소설가로 사셨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역시 멋졌다. 선생님이 결국 자신의 글을 쓰는 소설가로 사셨다는 게 내 마음대로 내게 조금 위안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선생님 사진 찾아보았다. 인터뷰 사진이며 투병하실 때의 선생님 등등이 많이 검색되었다. 내 선생님이 맞았다.
선생님은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1.2. 학년이던 어떤 학생이, 선생님 수업을 제일 앞자리에서 열심히 들었던 그 여학생이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단 걸 아신다면 기뻐하실까? 그 시작에는 선생님이 있었고, 그 씨앗을 선생님이 심었다면 기뻐하실까? 소설가 정태규 선생님 앞에 있던 그 ‘소설가’란 수식어를 선생님 제자가 물려받았단 걸 아신다면 좋아해 주실까? 책을 쓰면서 선생님도 책을 쓰며 거쳐갔을 혼자만의 시간들과 지독히 안 써지는 밤들을 나도 살아 보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이 살던 세계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선생님의 안부를 알게 되는 바람에 만나 뵐 수 없다는 게 조금 슬프다. 선생님 페북을 보니 가끔 제자들이 찾아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죄송한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선생님이 병상에서 눈 깜빡임으로 쓰셨다는 에세이집 <당신은 모를 것이다>를 앞에 두고 있다.(단편 소설도 몇 편 수록되어 있다) 왠지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 두렵다. 책날개에 있는 선생님의 이력에는 내가 선생님의 제자였던 시간 이후의 작품들이 많이 적혀 있다. 한 권 한 권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 봐야겠다 싶다.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책을 소중히 귀하게 읽고 싶다.
정태규 선생님께
선생님. 부산 낙동고등학교 제자 김연미입니다. 선생님이 심어주셨던 씨앗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서 선생님처럼 글 쓰는 사람이 되었어요. 제 이름 앞에도 선생님처럼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어요. 기뻐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