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에 있었던 일들
올 한 해 나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하지만 거창한 자아실현으로써의 글 쓰기가 아니라 생계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항상 연말이 되면 생각한다. 언제쯤 나도 글을 써서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길 빌며...
생각해 보니 살아오며 가장 부지런히 많은 글을 써온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먹고살만해졌나 살펴보면 그건 또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글로 버는 돈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언제 일이 끊어질지 모르고, 들어올지 모르는 삶 속에서 초조해하며 돈 걱정을 한다. 내 주변 나를 응원해 주는 누군가는 더 싼 집으로 가서, 조금 더 주거비를 아끼며 글 쓰기에 전념해서 한방을 노리면 어떠냐고 말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지금까지 너무 그렇게 살았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버텨가며 그렇게 살아서 간신히 얻은 그래도 조금 안정적인 이 주거환경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은 건데 돈을 벌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어마어마하게 큰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10평짜리 서울 외각의 오피스텔. ‘집’이라기보다 ‘방’에 살고 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다. 서울에서 혼자 15년 넘게 버텨오며 이사를 7번 다녀보니 2년마다 다니는 이사가 너무 스트레스였고, 그때마다 새집을 알아보고, 이사비용을 지불하고, 새로운 집에 적응하고, 정이 붙을 만하면 또 이사를 가는 패턴이 너무 피곤해졌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월세에 밀리고 밀려 외각으로 왔지만 그래도 월세보다 대출금의 은행이자가 싸다. 금리가 너무 많이 올라 매우 슬프지만 지금 여기는 내 집이다. 나도 언젠가 돈 벌어서 ‘방’이 아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언젠가 글로 돈 벌어 집 살 날을 꿈꾸며... 한해 글쓰기를 어떻게 해 왔는지 돌아본다.
2022년 11월부터 2월
이때는 3월에 초연된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을 계속 작업했다. 창의인재 30분 리딩. 90분 아트원 리딩. 80분 창작산실 리딩을 거치며 작품은 발전했지만 거듭되는 수정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많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고, 중간중간에 이게 정말 내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난리부르스를 추고 올라간 공연을 보니 결국 모든 걸 마지막엔 내 고집대로 해버렸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작품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껏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들을 주인공들이 하고 있었으니까. 정작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외치고 있으면서 나는 이 과정 동안 자꾸만 나를 의심했구나. 자꾸만 내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쭈그러져 있었구나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내가 내 이야기에 위로받아서 아 그래서 내가 글을 쓰고 싶었지... 하고 느꼈다. 인정받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출발한 작품이 그걸 넘어 내게 지금도 괜찮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내 못나고 어려웠던 한 시절을, 아무것도 아니라서 너무 초라해 보였던 나의 어떤 시간들을 이 작품을 하면서 서서히 채워나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 이야기를 다시 볼 날이 온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꿈을 꾼다는 건 삶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도 믿고 싶어서 써 내려간 이 이야기가 힘들 때 가끔 떠올리면 힘이 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윌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든든한 회사의 지원이 있었고, 너무 좋은 배우분들과 스텝분들을 만났다. 다만 내가 <그 여름, 동물원> 이후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이번에는 주크박스도 아니어서 초반에 조금 혼란스러워서 모두를 조금 힘들게 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그 과정을 겪으며 사람들을 얻었던 것 같아서 그 과정마저 행복했다.
1월부터 3월
이 시기에는 <디어 마이 라이카>의 책 초고를 썼다. 윌윌윌과 겹쳐서 머리가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머리를 좀 털어낼 수 있어서 생소한 책 쓰기 작업이 양쪽 작업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윌윌윌이 연습을 하는 기간 동안 점점 윌도 내 손을 떠나고 있어서 조금씩 더 책에 집중했다.
책은 또 처음이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나는 책 한 권의 분량조차 몰라서 편집자님을 웃겼으며, 자꾸만 문장을 지문처럼 써서 스스로 슬퍼지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대사만 써봤지 문장을 써본 거라곤 지문 밖에 없으니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너무 마음이 힘들어져서 정말 취미로 하던 독서를 조금 눈여겨보면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문장을 의식하면서. 문장을 의식하면서 책을 읽다 보니 작가마다 자신만의 문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대체 독서를 어떻게 해 온 거지? 하는 자책을 하면서 하나씩 배워가며 내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집요한 이승우 작가님의 문장이나 미사여구가 많은 이언 매큐언. 코니 윌리스처럼 수다스러운 문장을 쭈욱 쭈욱 써 내려가는 작가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필립로스는 비교적 깔끔한 문장 쓰기를 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한글을 내가 쓰고 싶은 방식대로 잘 다루는 작가는 신유진 작가님이나 신형철 평론가님 같은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지문을 쓰던 버릇이 있다 보니 자꾸 문장을 현재진행형으로 쓴다는 거였다. 예를 들면, 라이카. 무엇을 하고 있다. ‘있다’보다는 이 문장은 라이카 무엇을 하며 생각했다. ‘했다’를 넣은 종결이 나는 느낌으로 써야 했는데 나는 자꾸만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처음에 편집자님께서 초고를 보시고 뭔가 연극 같아요라고 말한 부분이 아마도 이런 부분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자꾸만 시각적으로 보이는 무대를 상상하는 것처럼 장면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해서 현실과 환상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아서 그런 부분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고, 인지하고 나서도 이걸 바꿔가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한 생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재미있어서 아래에 한번 남겨본다.
내가 열심히 수정고를 보고 있을 무렵.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다. 올해 수상자는 욘 포세 작가였는데. 이 분이 노르웨이에서 희곡과 소설을 동시에 쓰는 작가라는 걸 알게 됐다. 희곡도 그냥 써 본 게 아니라 엄청 많이 쓰고 무대에도 엄청 많이 올리고 있는 작가이면서 소설도 쓰는의 느낌이어서 어? 나와 1프로쯤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너무 보고 싶어졌다. 욘 포세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연극 같다고 하는 평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물론 내가 헷갈렸던 문장 종결 어미 같은 것들은 번역의 힘이 커서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겠지만 대체 어떤 부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소설을 ‘연극 같다’라고 느끼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아직 해내야 하는 마감들이 많아 욘 포세 작가의 작품을 읽지 못했지만 노벨 문학상 이후 그의 책도 많이 나왔을 테니 내년에는 꼭 이 궁금증을 풀어보리...
하다 보니 길어져 다음 주에도 2023년의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쨌든 2023년 1분기의 내 삶은 이랬던 것 같다. 그래도 맨날 글만 쓴 건 아니고, 연습실도 가고, 연습실 갔다가 커피도 먹고, 친구도 만났다. 내 생일도 있었다. 조금씩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 시작하는 기운을 느끼면서 3월 말부터 4월 초는 조금 쉬었다. 꽃피는 것도 보고 밀린 책도 읽으면서. 그래도 일이 있어서 행복했고, 오래 염원했던 공연이 올라가서 또 한 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