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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Dec 13. 2023

첫 책을 내는 마음. <디어 마이 라이카>

내 책이 서점에 있다니!


이제 저희의 손을 떠났습니다.

이 책이 독자들의 인생에서 좋은 시간을 선물해 주길 바랍니다.   

                                                                                                                  - 편집자님 -




 오랜 독자 생활 끝에 저자가 되었다. 오랫동안 품어 온 이야기가 책이 되어 손에 잡히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 크게 출렁거렸다.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내 작은 작업실과 수많은 카페들. 출판사 관계자 분 들과의 회의. 처음 겪어봐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되는 것 같았던 편집 과정, 내가 고집부려봤자 책 배테랑인 편집자님이 결국은 다 옳다고 느꼈던 어느 새벽. 글이 술술 써져 즐거웠던 짧은 순간. 글이 너무 안 써져 괴로웠던 대부분의 날 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오늘이 되었다.


 내 안의 어떤 것을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내어 보이는 일을 결심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걸 해낸 지금은 인생의 어떤 한 시기를 이 이야기가 있어 무사히 잘 건너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있었던 정체 모를 감정 들을 글로 풀어내 보고 나서야 그것들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을 쓰기 전의 나와 책을 쓴 후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내 인생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감각. 그렇게 책을 쓰는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디어 마이 라이카> 이 이야기가 시작된 건 코로나로 모든 공연 일정이 취소되었을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노력해 왔던 것들이 하나둘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사라져 버렸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글을 쓰며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활이 될 만큼의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기에 늘 전전긍긍했다. 드디어 조금씩 내 글이 돈이 된다 싶을 때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집안에 앉아 엎어진 공연과 취소된 계약. 점점 줄어가는 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너무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산책을 가보려고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다른 ‘세계’가 필요했다. 이야기라는 도피처가….


 깊은 절망 속에서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그 어떤 글을 쓸 때보다 즐거웠다. 처음으로 누가 쓰라고 해서 쓰는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는 정말로 내 일상을 구해내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다 없다 하면서도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전부인 공동 작업실의 내 자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계속하게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면 많이 갔던 작업실을 주 6일 출근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글을 썼지만,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뿐했다.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시간도 있겠다 생전 처음으로 과학 공부를 해야겠다 다짐하고 과학창의재단의 과학문화전문인력에 내 작품을 홍보하는 기획자의 마인드로 라이카를 가지고 참여하기도 했다. 모든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디어 마이 라이카>가 날 계속 쓰게 해 주었다는 것으로 내 인생에서 자신의 몫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은 다 자기 운명을 타고난다는 말처럼 내가 낳은 이 이야기는 자기가 알아서 성장했다. 별 기대 없이 글이 있어서 냈던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스토리부문에서 믿기지 않는 경쟁률을 뚫고 나에게 상을 안겨주는가 하면, 상에 딸려오는 상금으로 이후 1년간의 내 생활을 책임지기도 했다. 공모전 입상이라는 타이틀과 쓰고 싶은 걸 썼는데 써 놓고 보니 모두가 SF로 분류해 준 덕분에 과학창의재단과도 연이 생겼다. 많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뮤지컬로도 잠시 공연되었다. 그러니까 <디어 마이 라이카>는 그냥 아이가 아니라 복덩이였다. 이 복덩이는 나에게 또 한 번 선물을 안겼다. 출판이라는 선물을….


 며칠 후면 전국 서점에 내 책이 독자들을 기다릴 거다. 오랜 내 방앗간이었던 서점 한편에 내 자리가 생긴다는 게 기쁘고 또 쑥스럽다. 내가 오랫동안 예쁘게 키워온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무척 궁금하다.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내가 쓰는 작품들이 세상을 바꿀 것 같다는 거창한 꿈은 꾸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 덕분에 퍽퍽한 일상이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사실 편집이 다 끝나고 책이 나오는 걸 기다리는 시간 동안 혼자 은밀하게 행복했다. 세상에 이 이야기를 다 아는 사람은 나와 편집자님. 출판사 분들 뿐이라는 이상한 비밀이 퍽 기분 좋았다. 그 기간 동안 또 행복했으니 라이카는 나에게 자기 할 몫을 또 한 번 한 셈이다. 이제 내일이면 이 은밀한 비밀도 모두의 이야기가 될 거다. 그것도 그거대로 즐겁다. 편집자님의 말처럼 이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손을 떠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던 것처럼 독자들의 인생에서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오늘 집에 오니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이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내 첫 책 언박싱을 했다. 조판 과정에서 여러 번 보았던 페이지 구성과 표지였지만 실물로 만나니 왠지 낯설었다. 물성을 지닌 무게가 있는 책이 되어 나온 내 흔적이 기쁘고 또 많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 안의 조각 같았던 이 이야기가 나로부터 떨어져 또 다른 무언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제 너는 너대로 훨훨 날아가라. 난 여기에서 응원하고 있을게.‘


 8년 전. 공연이라는 형태로 처음 내 이름을 알린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내 스승님이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오늘은 네가 작가로 다시 태어난 날이니 기념일로 여기고 거룩히 지켜라.’ 그날은 그렇게 내 두 번째 생일이 되었다. 그날은 12월 18일이었는데 나는 오늘 소설가란 이름으로 또 태어나는 바람에 세 번째 생일을 가지게 되었다. 12월 13일. 두 번째 생일과는 5일 간격이다. 뭐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건 재미있으니까 좋은 일 같다.


 지금도 첫 책을 옆에 두고 계속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이 글을 쓴다. 첫 책과 함께 배송된 뽁뽁이와 노끈. 박스마저도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첫 책과 묶여 있는 모든 것이 다 특별하고 소중하다. <디어 마이 라이카>가 지금까지 잘 자라왔던 만큼 한 가지 더 큰 꿈을 꿔본다. 이 작품이 언젠가 영상화되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신카이 마코토 같은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고 싶다. 영화여도 좋겠다. 실사가 되면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니까.


 아무튼 나는 오늘 행복하고. 내 라이카는 기특하다. 이제부터 시작될 긴 마라톤에서 이 이야기가 묵묵하게 제 갈 길을 갔으면 좋겠다. 나는 거짓말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는 최대의 거짓말이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 가 닿는다면 어쩌면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구하고 뭐 하고는 아니어도 누군가가 내 책을 보며 웃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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