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공연하는 마음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내 오랜 꿈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12년 전에 꾼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어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일이 대단히 대단한 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뒤늦게 벅차올랐고 마침내 눈물이 났습니다.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울었습니다. 내 앞에 그 일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요. 행복해도 눈물이 난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확인했어요. 그래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그 꿈은 2011년 3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대학로의 어느 고깃집이었을 겁니다. 내가 함께 일하게 될 일본 극단 ‘신주쿠 양산박’을 맞이하는 자리였어요. 극단의 한국 내한 공연 기획 파트에서 일을 돕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나는 2010년에 너무나 인상 깊게 보았던, 내 인생을 바꿔버린 연극을 만들어낸 일본 극단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스텝. 제작진도 있는 자리였지요. 그 연극은 내 첫사랑이었어요. 연극 첫사랑이요. 나는 웃고 떠들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고깃집에서 홀로 고요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여기야. 여기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야.”
그 연극은 그들과 만나기 1년 전 보았던 신주쿠 양산박의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였습니다. 2010년. 일본어를 몰랐던 나는 자막에 의지해 연극을 보았어요. 아주 강렬했어요. 색채로 따지자면 아주 선명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도 그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기억합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의 무대 위에 수천수만 개의 유리구슬이 떨어져 내리던 관경을요. 그 풍경은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 됐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만들어 낸 극단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도 입시를 준비하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연극을 봤습니다. 서울국제연극제를 매해 챙겨보기도 했고, 국립극단이 하는 모든 연극들을 보았으며, 유명한 고전 작품들이 상연하면 희곡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찾아다니면서 관람했습니다. 하지만 이만큼 내 가슴을 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강렬한 연출도 연출이었지만, 아마 나의 이야기와도 닿아 있는 이야기라 어떤 ‘운명’ 같은 걸 감지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신주쿠 양산박을 처음 만났고, 이듬해 그들이 하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극단이 한국 공연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작품을 기획한 분이 학교 예술경영과에 재학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래서 그냥 그분을 찾아가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하지만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어요.” 그렇게 <신주쿠 양산박>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당시 그들은 ‘도라지’와 ‘해바라기의 관’이라는 두 작품을 각각 1주일씩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과 세종 M씨어터에서 공연하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때 배운 제2외국어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했습니다. 아니 구사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히라가나도 간신히 기억이 나고, 가타카나는 읽을 줄도 몰랐어요. 당연히 대화는 전혀 되지 않았어요. 아리가또, 고멘나사이. 도죠 요로시쿠가 전부였어요. 어찌어찌 손짓발짓을 해가며 그 해 그들을 만나 함께 일했습니다. 이후 그들이 한국 공연을 왔을 때에는 자막을 공동으로 번역하고 현장 오퍼레이션 스텝으로 참여할 만큼 일본어가 쑥쑥 늘었지만요.
그때 리허설을 보며,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무술합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꿈을 꿨어요. 지금은 한국 스텝 중 한 명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언젠가 나도 기획이나 자막파트가 아닌 작가로서 일본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정말 가능하다면 이렇게 만나게 된 소중한 일본 친구들과 언젠가 내가 쓴 대본으로 연극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요...
2011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2023년의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 첫 번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이 일본 공연을 가게 되었거든요. 3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던 이 작품이 2024년 2.3월에 도쿄와 효고현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 너무 많은 마감에 쫓기고 있어서 이 사실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랜 꿈을 이룬 날이었는데... 12년을 꿈꿔온 날이었는데 너무 덤덤하게 ‘아, 그렇군요.’라는 반응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놀랍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 뭡니까.
그날 밤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2019년 어떤 공모전의 일환으로 잠시 일본에 쇼케이스를 갔을 때. 마침 <신주쿠 양산박>이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이었던 터라 연습실에 불러서 참관하게 해 주신 다음 비싼 스시를 엄청 사다가 단원들과 환영회를 해 주셨던 김수진 연출님. 일본에 놀러 갔을 때 날 만나러 와주었던 토모미 언니와 이즈미 언니. 한국에 여행 와서 일부러 나를 만나고 가준 요시뽕. 그리고 극단의 젊은 일꾼이면서 나와 가장 나이대가 비슷해서 재밌게 어울렸던 카토. 코바. 소메노. 다이키. 케이나. 극단의 정신적 지주인 와타라이상과 싱코상. 조명의 이즈미 아저씨. 무감에 다키하라상. 음향에 오누키 상... 그리고 참 나를 딸처럼 아껴주셨던 오자와 상과 잘생긴 히구치 아저씨. 노래를 너무 잘했던 마호 언니. 참 다정하고 따뜻했던 사람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모두의 안부를 다 알 수 없어서 아쉽지만. 아직 연락이 되는 친구들한테는 꼭 자랑하고 싶습니다. 내가 술 먹으면서 말했던 ‘나 작품으로 꼭 일본 간다.’를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다고. 한국 스텝들은 웃고, 너희는 응원했던 그 꿈을 내가 이루고야 말았다고...
사실 나는 뮤지컬이 내게 자리를 쉽사리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쉬운 걸음일 수 있는 이 일본 공연의 경험이 너무 간절했어요. 그 어느 나라보다 가고 싶었던 나라에서 내 작품이 공연이 된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행복합니다. 언젠가부터 너무 커다란 목표와 성취를 이루고 싶은 욕심에 지금 내게 주어진, 남들이 보기엔 커다란 좋은 일도 나에게 행복이라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요즘 자주 받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기뻐하고 행복하고 싶은데, 내 앞에 놓인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내가 너무나 원하는 다른 일들이 그걸 가로막고 있어서 조금 속상해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나 행복해요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월에 내 꼬까 유진이. 대표님과 몇몇 직원분들과 함께 잠시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이야기가 과연 일본어로는 어떻게 공연되는지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영어는 못해도 일본어는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친구들하고 이야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아무 말로 시작했던 내 일본어를 이렇게 써먹게 될지 몰랐거든요. 아! 그리고 '헨리'역의 배우가 정말 헨리 나이의 배우란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어떤 그림이 나올지 너무너무너무 궁금해요.
얼마 전에 희곡 <소프르>를 봤어요. 6장과 24장에 내가 처음으로 양산박을 만났을 때의 감정과 맞먹는 독백들이 있었어요. 독백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배우가 대사를 하는 순간. 무대에 댄 내 손가락 끝에서 무대가 활활 타오르는 걸 느꼈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그 꿈을 내가 아직 놓지 않고 잘 간직해 왔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