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하는 수화. 나는 훌라당원이다
내가 춤을 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로 요약되었다. “네가 춤을? 혼또니?” 그런데 그 춤이 훌라라고 했을 때는 더 했다. “훌라???” 방송 댄스도 아니고, 취미 발레도 아니고, 한국 무용도 아니고 훌라? 그 하와이 춤?
이번 달 3월 25일이 되면 내가 훌라를 춘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 된다. 어쩌다 훌라였냐고? 글쎄. 사실 나도 내가 왜 훌라를 추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냥 정신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싶은 일이 일어났고 인스타를 봤는데, 나의 훌라 스승 하야티가 세상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춤을 추고 있는 걸 보았고, 마침 다음 훌라 수업이 오픈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별생각 없이 신청했고 수업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2024년 3월 25일 처음으로 훌라당에 발을 들였다.
책상에 앉아 엉덩이로 글을 쓰는 내가 춤이라니, 이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수업에 가기로 신청해 놓고도 믿어지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훌라를 두 달째 배울 때까지 내가 춤을 춘다는 사실에 적응이 되지 않아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벌써 1년이라니…. 사람 일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훌라는 말은 있었지만, 글이 없던 하와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몸으로 하는 수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렇기에 손동작으로 가사를 표현한다. 손으로 바다도 만들고, 꽃도 만들고, 조개도 만들고, 흔들리는 야자수도 만든다. 그래서 사실은 내가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보다 몸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나는 또 다른 ‘언어’를 몸에 새겨넣고 있다는 감각. 그러면서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세상만큼 내 안에 세상도 넓어지고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따뜻하고, 더 다채로운 색채가 훌라를 배운 이후로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기분이다.
글쟁이로서 훌라를 추면서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일단 춤을 추고 있으면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헷갈려서 온갖 정신이 춤에만 집중되어 잡념이 사라진다. 머리를 비우기에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의 이유가 나를 계속 춤추게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나를 사용하지 않고 하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땔감 삼아 캠프파이어 해서 무엇인가 얻어내는(혹은 뽑아내는) 기분이 들기 마련인데 훌라를 추는 것은 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저 훌라의 따뜻한 메시지들을 느끼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연이 너무 아름답다거나,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거나, 저기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이 꼭 너인 것 같다거나, 우리는 모두 연대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라거나 하는….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들 위에 그냥 나를 두면 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채워지고 채워져서 넘치는 기분이 든다. 이 충만한 기분 때문에 나는 이 춤을 앞으로도 오래 계속할 것 같다. 그리고 훌라는 무엇을 표현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글도 그렇고, 예전에 짧게 배웠던 발레나, 음악은 자꾸만 나 자신 안에 있는 걸 보여주라고 나를 몰아붙였다. 결국 그게 그 예술을 하는 목적이 되기 때문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곧 ‘나’라는 알맹이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훌라는 그저 자연이 아름답구나~ 하면 된다. 그저 내 몸으로 자연을 찬양하면 된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마음 편한 행위인가.
훌라를 추며 바뀐 것들도 있다. 훌라는 미소가 약속이라서 춤을 추고 있는 동안에는 미소 짓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에 얼마나 무표정으로 살았던 건지 볼 근육이 땅기고 어색해서 어정쩡한 웃음뿐일지라도 내가 웃어도 되는 공간과 상황이 생겼다는 것만이 기쁘다. 그리고 마냥 싫기만 했던 여름이 조금 견딜만해졌다. 게다가 내 삶의 채도가 높아졌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정말로 높아졌다. 평소 몸에 딱 붙는 나시티나 탱크탑을 입을 일이 없었는데 훌라를 하면서 어깨를 드러내는 옷들을 거리낌 없이 입게 되었다. 그리고 무채색으로 가득하던 내 옷장이 훌라 파우(훌라를 출 때 입는 스커트)와 탑들로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상들로 채워졌다. 평소엔 입지 않을 것 같은 상의를 몸에 걸치고 파우를 입고, 머리에 꽃을 꽂고 훌라를 추다 보니 모든 자연을 긍정하게 되었다. 여름도 싫지 않고, 겨울도 밉지 않다. 그냥 주어졌으니, 그에 알맞게 살아내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더위와 추위가 화가 나거나 짜증스럽지 않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훌라를 추는 작가가 되었다. 훌라를 추는 동안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에서 나름 데뷔(?)도 했고, 훌라당의 월요올라당 식구들과 한강 버스킹도 해보았다. 소소하게는 월드컵공원에서 춤도 춰봤고, 선유도 공원의 달빛 아래에서도 훌라를 췄다. 추석때는 가족들 앞에서 춤도 춰봤다. 이렇게 나는 1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지난봄. 벚꽃이 흩날리던 때 훌라당 야외 수업 때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춤을 췄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언제 맨발로 풀과 흙을 밟아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이 어쩌면 지천으로 널려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그런 걸 하나도 못 누리고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춤이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내가 뭘 해내느라 유예했던 행복들을 다시 보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내가 훌라를 배운다고 하니, 작품에 훌라 이야기 쓸 일 있냐며 답사 같은 걸 나간 거냐고 물어본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아니, 나는 그냥 이게 좋아서 추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왠지 나 같지 않아서 웃었다. 내가 웃으니 상대방들도 웃었다. 그래. 살면서 그렇게 이유 없이 즐거운 것도 있어야지. 생각해 보니 나는 좋아했던 음악을 전공을 했고, 좋아했던 글은 직업 삼았다. 그다음에 취미로 SF소설을 읽고 과학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도 어쩌다 보니 일에 적용이 되어 작품 쓰는 데 활용해 버렸다. 그렇게 취미를 자꾸만 직업화 시켜버린 나는 훌라만큼은 절대로 ‘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저 그냥 좋은 것으로, 계속 오래 곁에 두고 추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가끔 훌라 이야기를 가지고 와야지. 요즘 내 일상에 가장 큰 테마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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