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는 아직 아니다.
서류를 쓰다 보면 자주 직업란(職業欄)을 만난다. 내가 회사원이었던 시절에는 콘텐츠 팀이라고 소속을 적었고, 공연 팜플릿에는 ‘대본’이라고 ‘하는 일’을 쓰곤 한다. 보통의 직업란에는 그 사람이 어떤 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적히지만, 나는 대부분의 언제나 프리랜서라고 적는다. 물론 작가라고 쓸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 아직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기분이 들어 그러기가 왠지 어렵다. 어떤 이들은 쉽게. 작. 연출이라거나. 무슨 무슨 작품을 한 누구라고 자기를 당당하게 적기도 하던데 나는 왜 그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도 음향·조명·자막 오퍼레이팅을 했던 경험과 크게는 조연출. 공동 번역과 기획이라는 어쩌면 내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경력들이 있지만, 내 프로필에는 언제나 작가로서 내가 참여한 작품만을 쓴다. 그러니까 기사를 검색했을 때 공식적으로 증빙된 것들만을 쓰고 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난 언젠가부터 그러고 있다. 만약 나도 내가 했던 모든 직함들을 끌어모은다면 번역가. 기획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직업란의 작가라고 쓰지 못하는가? 공식적인 작품들이 있음에도 왜 그러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건 내가 생각하는 직업이라는 것은 ‘그 일로 먹고사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글만으로 벌어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본 적이 지금껏 없다. 나는 정확히 내 이름을 걸고 작품을 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2015년 12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으로 작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 안의 작가는 글로 돈을 벌고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인 이상, 나는 글로 밥 벌어먹고살고 있지 못하니까. ‘아직 작가가 아닌 것’이다. 글로 밥을 벌어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그만큼 내 작품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와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작품 자체로 인정받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내 스스로는 작품에 대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지만, 내가 돈을 못 버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부끄럽다. 지금도 부끄럽다.
가끔 돈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게 글일 때도 있고, 글이 아닐 때도 있었다. 언제나 작품을 하고 있지만, 계약 상태가 아닐 때는 수입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좋아서 쓰는 이야기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는 동안 부당한 페이로 일을 하거나, 쉽게 무시당하는 경험을 했다. 가끔은 돈보다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인정받는 작가였다면 이런 환경에서 이 사람들과 일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래서 내 꿈은 어느 날부터인가 대단해지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내 동력이 되는 마인드인데 나를 그런 취급했던 이들에게 복수해 주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내가 복수하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지만, 내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잘되는 것으로, 그랬을 때 그들과 절대 일하지 않는 것으로 꼭 되갚아 주고 싶다. 나의 데스노트에는 몇 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 중 몇 명은 알아서 없어져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미 소식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슬픈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돈 없음의 상태가 만성이 되었으므로 슬픈 시기도 지났다. 내가 이 직업을 가진 것을 평생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도 가끔 예전에 좋은 회사 때려치운 거 후회 안 하냐는 질문을 듣는다. 지금은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후회한다고. 되돌아간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을 거라고…. 회사 다니면서 쓸 거라고! 왜냐하면. 배가 고프면 꿈도 소용이 없으니까. 꿈이 가득 있다고 해서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직업 프리랜서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의 내 선택을 잘못된 선택으로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 작가는 늦되는 직업이라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당장 잘돼서 글로 먹고사는 작가가 되고 싶다. 다행인 건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작품 한 작품 작품들이 쌓이면서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갔다. 물론 싫은 사람도 엄청 많았지만, 그들은 뇌리에서 지우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좋은 사람들만 남았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한국 소설 코너에서 내 책을 찾으면 기쁘고, 고생한 공연이 올라가서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관객의 뒷모습을 보고 싶으면 행복하다. 아직 우리끼리 쓰고 있어서 우리끼리만 아는 대사와 노래들을 보고 듣고 있는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가끔 내 작품을 보고 ‘뮤지컬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너희가 쓴 노래 처음으로 부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소설이 재미있어요. 보고 나니까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었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책 없이 다시 가슴이 뛴다. 돈 못 벌어서 슬픈 와중에도 그 슬픔을 날려버릴 만한 행복이 있다. 내가 이 맛에 이 일을 못 때려치우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글로만 먹고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직업란에 자랑스럽게 ‘작가’라고 쓸 것이다. 나는 내가 직업란에 자신 있게 ‘작가’라고 쓰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나는 그날을 위해서라도 내 직업란을 프리랜서로 남겨두고 싶다.
글 써서 먹고사는 작가. 나는 그게 되고 싶다.
그래서 냐는 아직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윌윌윌 이천 공연 둘째 날 (2024. 11.10)
이날 ‘작가’인 나는 (작)꼬까와 관객분들과의 만나는 자리에 데뷔(?)했다. 창작자 지망생분들이 와 주셨다.
(나와 꼬까 둘 다 관객과의 대화나 제작 발표회 등에서도 무대에 올라 본 적이 없다.
나는 왜 그런 거 하지 않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는데 안 불러줘서라고는 말 못 하고, 하하.
작품 앞에 창작자가 있는 거 멋지지 않잖아. 작품으로 할 말 다 했으니까 등으로 변명? 했다.
그런데 반은 진심이다.)
내가 힘을 주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내가 힘을 받고 왔다.
이천 공연이 끝나고 관객 분께서 주고 가셨다고 회사에서 봉투를 창작자들에게 줬다.
철수가 정신없었던 터라 일단 받아왔는데 열어보니 전 배우스텝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모두의 것이니, 여기 이름 적힌 모두가 가져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고, 당일 받아 가지 못했던 스텝 배우들은 서울로 돌아와서 회사에 들러서 본인 몫을 가져갔다고 들었다.
우리는 아직 이걸 어느 분께서 주셨는지 모른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동봉해 주셨던 편지도 모두 함께 보았습니다. 애써 시원하다 마음 달래며 서울 가다가 눈물을 찔끔 흘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