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삶의 일부다.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새로운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느끼는 필연적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이에 우리는 자연재해, 질환, 전쟁과 같은 불안을 감당하기 위해 종교, 학문, 주술 등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러나 이성 중심 사회의 도래로 진보를 향한 욕망은 더해졌고, 비약적인 변화에 적응하며 더 큰 불안이 양산되었다.
프리츠 리만은 이러한 불안의 근본 형태를 총 4가지로 구분했다. '헌신을 피하면서 자기를 지키려는 불안(분열적 인성)', '독자적 자아 되기에 대한 불안(우울한 인성)', '무상과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강박적 인성)', '필연성에 대한 불안(히스테리성 인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불안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보편적 문제이지만, 어린 시절의 불안과 관련해 그 규모와 밀도, 대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 파브리아노 워터칼라 스케치북, 신한 수채 물감 ]어린 시절 강도 높은 불안에 노출될 경우 발달장애를 겪게 되면서 병리적 증상이 발현된다. 불안을 감당하기 위해 타인과 병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일체화되기 위해 집착하고 매달린다. 또한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강박에 시달리거나 충동적이고 히스테리한 성향을 뿜어낸다. 각각의 형태와 정도는 다르지만 불안 요소를 감당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이다. 이로 인해 내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불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가령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무의식이 불안을 만든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내면의 무의식, 즉 인간의 불안, 억압된 욕망. 금기 등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비가시적 요소를 가시화함으로써 무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안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갈등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예술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내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면 자기 긍정을 통해 내적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특히 글쓰기는 불안 치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불안의 실체와 그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불안이 일상의 조화를 깨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대상관계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진짜 자기와 만나게 되고, 대상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도 생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일기를 보자.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군더더기를 쏟아낸다. 먼저 그 산출물을 주머니에 담는 과정에서 1차 정화가 일어나고, 반성적 사고를 통해 2차 정화가 이뤄진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일기는 감정의 찌꺼기를 담는 그릇 역할이 되는 거다. 동시에 나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기 확신이 생긴다. '아,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래도 인내심은 좋은 편이야.'라는 인식과 함께 '상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줄여야 해.', '무조건 참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야'라는 반성을 통해 균형을 찾아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세상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다.
불안을 다스리면 행복이 온다
불안이 삶의 일부라면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행복은 삶 자체에 있다. 보석이 흙 속에 가려지다 보면 존재 가치를 잃는 것처럼 행복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불안에 휩싸이다 보면 행복의 반짝임을 보지 못한다. 반면 불안의 장막을 걷어내면 여전히 그 반짝임은 우리를 반길 것이다. 인생의 고통, 좌절, 분노라는 장애물을 다스리다 보면 안정, 희망, 행복의 열매가 넌지시 말을 건넬 것이다.
"드디어 왔구나. 평생 널 기다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