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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Feb 08. 2024

세상이 날 용서했어

정병길의 <내가 살인범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살인마의 인생 전환


영화는 식인 살인마 '사가와 잇세이'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신체 컴플렉스를 지닌 한 청년이 자신의 절친한 여학생을 죽인 후 <악의 고백>이라는 책을 펴내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일본 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 여세를 몰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주인공 이두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출판업계과 미디어후원업으며 승승장구 한다.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곡 연쇄살인사건, 11번째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앞두고 이두석(박시후) 나타난다. 자신이 10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며 언론 앞에 당당히 나선다. 그동안의 범죄를 기록하여 책을 출간하고,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형사 최형구(정재영)는 연곡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기 위해 15년을 바친 인물로, 형사이자 피해자 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애인을 죽인 범인을 눈앞에서 놓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공소시효를 며칠 앞두고, 그는 범인을 수면 밖으로 꺼내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감독은 형사 최형구이두석의 대결 구도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이들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주선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언론(기자, PD). 영화 전반에 모든 장면에서 기자들과 언론의 모습이 노출된다. 기자들은 이두석의 일거수를 취재하면서, 그선행을 앞다투어 보도한다. 이에 나는 '살인마의 인생 전환을 지원하는 언론의 모습'주목하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영화 중반은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가족들의 복수극을 그린다. 부인을 잃은 땅꾼과 그의 딸, 딸을 잃은 한지수(김영애)와 그의 아들, 가족을 잃고 감옥에서 출소한 강도혁이 한팀을 이뤄 복수전을 계획한다. 이두석를 죽이기 위해 수영장에 뱀을 풀고, 뱀에 쏘인 그를 응급차에 실어 나르는  리얼한 액션과 추격전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두석을 직접 죽이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언론 매체는 최형구와 이두석의 케스팅에 열을 올린다. 법의 제도가 아닌 텔레비전을 통해 이두석의 죄를 심판하겠다는 의도다. 방송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청률에 사활을 다. 그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위험불씨는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두석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방송 국장은 최 형사와 이두석을 출연시키라 지시한다. 박PD가 '최 형사가 생방송 중 총을 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자, 국장은 '오히려 특종을 잡을 기회가 된다'며 섭외하라고 강요한다. 결국 또 다른 용의자 ‘J의 출현으로 리얼리티쇼는 고조에 이르고, 자극적인 보도는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언론이 이두석을 부각시키며, 생방송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방송국은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하는 도중, 용의자가 도착하 양해 없이 카메라를 돌린다. 그들은 연쇄살인범을 찾거나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목적이 없다.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지난 죄를 묻기보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의도가 더 짙어 보인다. 최 형사는 이러한 언론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했고,  ‘J’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감독은 언론의 특성을 정확히 분석하여 생방송이라는 현장이용하였고, 사건 해결의 중심 고리로 활용했다.



바보 상자와 관음증


미디어에 부정적인 시선을 표명했던 권터 안더스는 텔레비전 보도의 조작과 왜곡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 대중을 자기 집 안에 갇혀 있는 은둔자로 표현하면서, 수용자의 무비판적 수용을 문제 삼았다. 수용자는 TV속 등장인물을 유희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왜곡된 현실을 비판없이 수용다. 담요를 뒤집어 쓴 채 텔레비전 시청에 열을 올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미 텔레비전과 나 사이에 경계선은 사라지고, 타인 일상을 관음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리얼리티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리얼리티의 장점은 생동감과 무형식이 주는 자유분방함에 매력이 있다. 시청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유튜브가 성행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연자는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고,시청자들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가끔 출연자의 갈등구조에 초점을 맞추거나, 억지스런 케릭터를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나는 독수리 앞에 앉은 소녀를 찍은 후, 여론의 매를 맞은 케빈 카터가 떠올랐다. 그는 사진을 찍느라 위기에 처한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풀리처 상을 받은 후 여론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권리에 집착하다 비판의 도마에 오르내렸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수단의 현실을 전달하려는 케빈 카터의 진심도, 그를 비판하는 , 보도 윤리의 중요성을 밝히는 사례가 되었다.


언론은 거대 권력의 중심점에 서있다. 권력자의 비리를 폭로하고, 미해결 사건도 밝히며, 일반인을 한순간 유명인으로 만든다. 사회 변화의 중심점에 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아무쪼록 사회 정세를 뒤바꾸는 그 막강한 힘이, 국가 기간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쓰여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보도라 할지라도 인권 존중 차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며, 언론인의 보도 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 타인을 공격하고 깎아 내리기에 급급한 모습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출연자들의 일상이 과도하게 노출되고, 공격적 여론에 시달려 마녀사냥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 <내가 살인범이다>는 정보의 바다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안겨준다.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의 역할이나 수용자의 책임에 관해 한번 쯤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본 영화는 액션이나 추격씬에 집중해 보더라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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