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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Jan 31. 2024

기다리지 않은 손님이 왔다

김광태의 <손님>

[ 사진 출처: 네이버]


     

환상, 상징계의 균열을 메우다


악사 우룡(류승룡)이 산골 마을 풍곡리에 아들을 데리고 다. 마을 사람들은 우룡의 방문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촌장(이성민)은 하룻밤 묵겠다는 우룡의 부탁을 수락한다. 우룡은 전쟁 종료 사실을 함구해 달라는 촌장의 말에 의구심이 들지만, 아픈 아들이 걱정돼 그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풍곡리 마을은 포악한 쥐로 인해 주민들의 불안이 과중된 상태다. 이에 우룡은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쥐떼를 소탕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는 쥐떼를 말끔하게 소탕한다면, 소 한 마리 돈을 쳐준다는 촌장의 말을 굳게 믿는다.


촌장은 마을의 최고 권력자다. 6.25 전쟁이 한창이라며, 마을 사람들결집시킨다.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해 간다. 급기야 자신이 죽인 무당을 대신할 사람으로 오갈 데 없는 미숙(천우희)을 세운다. 한 예로 잔칫상을 준비하던 미숙이 붉은 달걀을 깨뜨리자, 신내림의 증조로 몰아간다. 촌장이 만든 세상에 도구로 전락해 버린 미숙. 촌장은 미숙이 우룡의 순수함에 이끌리자, 무당 역할에 충실하라며 협박한다.


과연 촌장이 원하는 건 뭘까. 동네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살인은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궐기 아래 살아온 풍곡리 사람들. 그들은 원주민(나병 환자촌)을 동굴에 가둬 죽이고,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다. 쥐가 고양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죽인 것이라며, 자신의 죄를 환상과 거짓으로 덮는다. 그들의 내면은 살육의 그림자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왜곡된 진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알면서도 따르고(기억을 공유하는 어른들), 모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기억이 없는 아이들)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에 우룡은 상징계의 결핍을 드러내는 존재,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림자 투사를 통한 자기 위안      


사람은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한다. 자신이 외면했던 열등한 부분을 상대방에게 슬쩍 건네주며 회피와 위안에 빠진다. 중세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마녀 사냥을 보자. 페스트라는 질병의 책임을 힘없는 여성에게 전가시켰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해, 각자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촌장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우룡을 내쫓고 마을의 평화를 되찾고자 한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해 우룡을 빨갱이로 몰아간다. 촌장이 자신의 그림자를 우룡에게 투사한 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당이 남긴 유언에 대한 공포심, 마을 사람들(나병환자)을 죽이고 마을을 빼앗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 일본 장교 출신이라는 이력 등이 그것이다. 결국 우룡은 촌장의 권위와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동시에 공포, 불안, 혼돈의 원인이 되기에, 없애야 할 대상인 것이다.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착취


쥐 소탕 작전이 성공한다면 소 한 마리 값을 거뜬히 내겠다던 촌장. 쥐떼를 몰아낸 우룡은 장애를 가진 악사다. 또한 휴전 상황을 발설하지 말라는 촌장의 말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룡에게도 특별한 능력은 있다. 팔랑개비를 통해 바람의 흐름이해하고, 피리 소리로 동물의 이동을 파악할 만큼 자연에 능통하다. 쥐의 동선을 파악하고, 자연 향료를 만들어 동물을 유혹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전문가다. 더군다나 똘똘한 아들과 힘을 합쳐 쥐떼를 몰아내고, 바이올린으로 흥을 돋우니, 누구보다 유능한 인물이다.


오늘날 열정페이가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훈련생이나 수습생을 착취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지 않은 기업들이 생기면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필자가 노동 착취를 끌고 와 문젯거리로 삼는 이유는 우룡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쥐떼를 소탕한 뒤 보상은커녕 간첩 혐의를 씌워 손가락을 절단한다. 우룡은 마을의 가장 골칫거리를 해결했음에도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 임금 연체, 신체 폭행 등의 불합리한 상황에도 호소할 길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급기야 우룡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촌장의 협박에 못 이겨 등을 돌린다. 그들은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순순히 따른다.


<손님>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우룡의 캐릭터다. 우룡은 입체적인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저 불합리한 처우를 견뎌낼 줄만 알았던 그가 대변화를 일으킨다. 자식을 잃은 부성의 광기로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쥐떼에게 뜯겨 죽고, 아이들은 동굴 속에 갇히는 복수극벌어진다. 우룡의 절묘한 복수극이 통쾌감을 주지만, 판타지 호러라는 장르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쥐라는 소재가 국내 관객들에게 혐오감을 걸까. 자식을 잃은 우룡의 한을 스크린으로 채우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풍곡리를 절멸시킨 우룡의 광기, 그 보이지 않은 살육과 공포를 상상하게 만든 지점이 흥미롭다.



<손님>은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담은 호러 판타지 영화다. 인간의 변화무상한 모습, 음모와 거짓으로 일그러진 사회의 모순을 담은 작품이다. 공포와 긴장을 기대했다면 '호러 없는 호러 영화'라고 평하지만, 인간의 이중성을 함축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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