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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Jan 24. 2024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엄태화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 이미지 출처: 네이버 ]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영화는 대지진 발생한 후, 폐허가 된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황폐화된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황국 아파트. 그곳으로 외부인이 몰려들자,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생존 본능의 극단을 보여준다.


민성(박서준)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물로, 단란한 가정을 꿈꾼다.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게 자랐기에, 가족에 대한 애착이 크다. 반면 명화(박보영)는 질서 유지뿐 아니라 사회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돌보며,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도균(김도윤)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한다. 주민 규칙(외부인 출입금지) 보다 상생의 의미를 크게 여긴다. 강제로 쫓겨날 걸 알면서도, 타인을 돕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추위와 공포에 죽어갈 걸 알기 때문에, 이를 외면할 수 없다. 그는 규칙보다 도리를 중시하며, 본능보다 나눔의 의미를 아는 이다.


금애(선영)는 부녀회장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한다.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판단력이 누구보다 빠르다. 세범에게 대표직을 권하면서 권력의 실세를 획득한다.  입주민의 단합을 이끌어내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집단 이기주의의 표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세범(이병헌)은 책임감이 강하다. 생계를 위해서 사업, 택배, 막일까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 불행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 문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해결법찾아 나선다.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졌지만, 충동적 성향이 많은  인물이다.

  

공격성에 대하여

  

공격성은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때 사용한다. 생존하기 위해 생태계를 이용하고, 국가 번영을 위해 살육도 마다하지 않는. 이것 외부 자극에 맞설 수 있는 힘이지만,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감독은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인간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로 외부적 갈등을 묘사하는데,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이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아파트 주민은 외부 생존자들을 내쫓고,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 그들은 외부인의 식량을 탐하면서도, 아파트 출입은 허가하지 않는다. 자신의 불행에 분노하면서,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하다.


세범은 전 재산을 잃게 되자, 사기꾼 영탁을 찾아간다. 죄의식 없는 타자의 행동에 분노가 일어나자, 내면의 공격성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는 영탁의 뻔뻔함에 격분하면서, 들끓는 화를 외부로 표출한다. 노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탁을 살해한 뒤 시신을 은닉한다.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채 불행한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균은 위기 상황에 외부인을 돕는다. 그들이 숨어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내어준다. 그 뒤 규칙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폭행당한다. 그들의 방식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 도균. 그는 도덕적 가치를 짓밟는 인간의 이기심 앞에 무력함을 느낀다. 외부로 향할 공격성을 내부로 돌리며, 불의에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한다. 내부적 공격성은 우울감과 무력감을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완전한 행복이란 있을까. 가계 부채로 힘들 걸 알면서도 영끌족이 탄생하는 이유는 뭘까. 타자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심리 구조 때문이다. 우리는 존경받는 직업을 선택하고자 명문대에 진학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향을 좇으며 부귀영화를 꿈꾼다. 이러한 욕망은 사회적 시선, 타인의 인정에 이끌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관련된다. 자크 라캉은 이러한 사회상을 분석하며,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산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범은 모든 재산을 고, 살인자로 전락한다. 그 뒤 영탁의 신분을 이용하여,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 자신의 결핍을 '아파트 대표'라는 지표로 덧씌운다. 세범은 주민들의 관심에 이끌려 대표 자리에 오른 뒤,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 외부로 식량을 찾아 나서면서, 주민들을 위해 희생한다. 그러나 식량이 줄어들고 외부 침입이 잦아지면서, 견고하지 못한 그의 입지는 흔들린다. 그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세범의 모든 위는 상징계(구조화된 사회 영역)의 균열을 상상계(가상, 상상적 질서)로 메우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인정에 대한 욕망

   

인간은 유아기 엄마와의 관계에서 전일감을 느낀다. 이러한 만족감은 엄마와 분리된  상실되고, 이는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남는다. 우리는 대상의 환유, 즉 대상을 달리하며 내 안의 결핍을 메운다. 명품 가방, 수입차, 펜트하우스라는 물질을 취하며, 타인의 시선에 만족하며  것이다.


과연  내면의 전능감을 물질로 채울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환상 가로지기를 통해 그것이 허상인 걸 알고, 실재계(상징계의 의미화가 실패로 돌아가는 지점)와 대면해야 한다. 인간의 본질을 알기 위해, 내면의 무의식과 마주해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세범이 맨몸으로 불을 끄는 모습이다. 그는 현실 대처 능력이나 희생정신이 강한 인물이다. 아파트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대가 없는 희생이 아니었다. 그의 내면에 '보상(인정)'에 대한 기대가 뿌리 깊이 내재돼 있다. 한 예로 민성이 아이를 잃은 후 죄의식이 든다고 하자, 세범은 모두 보상받을 거라 위로한다.  보상이란 타자의 인정을 통해 사회적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바람이다.


세범은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쓸쓸히 죽어간다. 피곤한 육신을 안아줄 가족도, 이웃도 없이 생을 마감한다. 의미 있는 존재로 살고 싶었던 세범. 그의 바람은 모두 허상이 되었다.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세범은 살인자라는 기표를 달고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죽음의 안락감조차도 허용되지 않은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안타깝. 


니들 그 얘기 들었어? / 뭐? / 아파트? / 야 이 병신새끼야 그걸 믿냐? 어? 여기 아파트가 어딨냐. 이 난리가 난 게 벌써 두 달째인데. 아파트는 얼어 죽을 / 저는 들었어요. 옛날이랑 똑같대. 천국이래요. 천국 / 내가 들은 건 좀 달라. 사람 잡아먹는 데라고 했어. 천국이다 뭐다 그런 소문 퍼트린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식량으로 쓴다는 거야. (생략)    - 노숙인의 대화 내용 -




위 인용문은 노숙인 4명이 음료자판기를 털어 허기를 채울 때 나눈 대화다. 노숙인1(엄태구)은 황궁아파트 주민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며 두려워한다. 그는 영화 후반에 다시 등장하여 민성과 명화를 뚫어질 듯 응시한다. 그의 손에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뼈다귀가 들려 있다. 감독은 우정 출연으로 화재가 된 인물까지, 주제 전달의 요소로 사용했다. 그의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인간의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파트라는 이미지에 상징성을 부가하여,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궁 아파트' 반어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살아가는 인간, 그 양면성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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