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의 창작 배경은 이렇다. 감독은 ‘시골 소녀의 도시 상경’을 기획하던 중에, 배우 ‘폴 다노’의에피소드를듣는다.새끼를 잃은 어미소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 프랑스에서 만난 진보 청년을 토대로 스토리를 완성했는데, 그게 바로 <옥자>이다.
영화는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가 자신이 키우던 옥자(슈퍼 돼지)를 찾아 뉴욕 땅을 밟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감독은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상을 그리는데, 첫 주인공은 미란다(틸다 스윈튼) 자매이다. 그들은유전자 조작 동물(슈퍼돼지들)을 모아, ‘슈퍼돼지 선발대회’를 개최한다.회사 경영에대립각을 세우며, 이익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한다.이는자본주의 인간유형의 극치를 보여주는부분이다.
두 번째는 조니 박사(제이크 질렌할)이다. 그는 대형 회사의 부조리에 동참하는 대가로 인지도를 높인다. 돈과 명예를 취하기 위해, 사명감과 양심을버린 인물이다. 세번째는할아버지 희봉(변희봉)으로, 부성이 강한 인물이지만돈에 대한 집착이 많다. 할아버지와 미자의 대치 상황이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지는데, 저금통을 깨고 돈을 뿌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미자와 할아버지의 갈등, 돈을 내팽개치는 미자와 돈을 움켜쥐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대비된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도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대학원생 윤주(이성재)는 교수 임용을 위해 아내의 퇴직금을 로비 자금으로 준비한다. 그는 개짖는 소리가 싫다며, 창고에 가두거나 던져 죽인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된다 싶으면 존재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외에 현남(배두나)은 직장에서 모함당해 쫓겨나고, 윤주의부인(김호정)은 출산을 이유로 퇴직당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상하 관계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상을 안타깝게 그린다. <옥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이 다르다. <플란다스의 개>는 자본주의 폐해로 변해가는 인간상을 그렸다면, <옥자>는 이에대항하는 모습을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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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회복과 생명 존중 의식
봉준호 영화에는완전한 악인보다불완전한 인물이더 많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마더>의도준 어머니(김혜자), 심지어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조차 동정심을 유발하게 한다. 대부분 결핍이 많거나 잘못된 이상을 가진인물이다.
<옥자>의 낸시 미란다도 마찬가지다.감독이그녀의 독백을 장시간 그린이유는 뭘까. 그녀가 폭력적인 환경에서양육되었고, 유약한인물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조니 박사는 동물 학대에 가담한 뒤 자괴감에 빠진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결핍된 존재의원형을 그대로보여준다.
<플란다스의 개>의주인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학원생인 윤주는 교수를 꿈꾼다.성공을 향한 젊은이의 절박함에주목해보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동네 개 두 마리를 가두거나 죽인다.영화 말미에 임신한 아내도, 반려견을 잃은 주인도 헤아릴 줄 아는 이로 거듭난다. 동물 학대범이라비판받겠지만,동정심의 여지는남겨 둔다.
평론가들은 ‘<옥자>는 곧 <플란다스의 개>의 연장’이라 말한다.주인공모두 현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순박함과 열정을가졌다. 미자는 슈퍼돼지 옥자를, 현남은 이웃집개를 찾으려온갖 수고를 감수한다. 이처럼 부조리에 저항하는 열정을 가졌지만, 한편으로 어리숙한 면이 많다. 현남은 현실 극복에 어려움이 있지만, 미자의 경우‘동물보호단체 ALF’와연대하며 이겨낸다. 봉준호 영화는 인간성 회복과 생명 존중 의식이 도드라진다.부조리에 저항하는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연대와 협력을 강조한다.
‘봉테일’이라 불리는 이유
봉준호 감독에게 ‘봉테일’이라는 애칭이 있다. 봉준호의 ‘봉’과 디테일의 ‘테일’을 합친 말로, ‘봉감독만의 디테일’이라는 말로 쓴다. 그 의미는 극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계산, 이를 토대로 영화 제작의 원칙을 실현하는 데 있다.그는 서사 구조를 넘어, 씬의 구성에 공을 들인다.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감독에 비해 촬영 횟수가 현저히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의도나 주제, 캐릭터 구상에 있어서 완벽을기한다는 의미다.
<옥자>의 경우는어떨까. 먼저 그는 캐릭터 구상 능력이 남다르다. 미자는 산비탈을 가뿐히 뛰어내리고, 유리벽을 뚫어낼 정도로 강인한 인물이다. 일반 소녀가 해내지 못한 일들을 서스름 없이 한다. 또한 돈(물질)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하다. 옥자를 위해 저금통을 깨뜨리지만, 일이 끝난 뒤허리춤에 찼던 힙색을 내던진다. 돈은생명을위한 수단일 뿐, 그에 앞서지 않는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그는 상징적 이미지를 연출하며, 관객들의 공감을이끌어낸다. 감독이 촬영과 음악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옥자>에는 유독 낙하하는 장면이많다. 산비탈에서 떨어지는 옥자, 비탈길을 달리는 미자, 한강을 뛰어내리는 동물보호단체 회원.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많은 이들이‘낙하’에서 타인을 위한 희생과탈권력의 의미를 찾는다.많은 이들이 옥자를 구출하는 데 사활을 건 이유도여기에 있다. 감독은 미자나 ALF 회원들을 통해 ‘생명존중, 평등, 평화’라는주제 의식을 전달하려 한다.
지인들이 묻는다. 그 많은 영화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나는좋은 영화라면어제 본 듯생생하다. 유독 봉준호의 영화들이 그렇다.<살인의 추억>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송강호나 <마더>에서 춤추는 김혜자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러한 장면들은 푼크툼이 되어 내 가슴에 '좋은 의미의 상처'를 낸다. 이는오랜 시간 감동으로남아잔잔한 여운을 전한다.
봉준호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장르의 조합’이다.상업 영화가 가져야 할 기본 구성, 즉 서스펜스와 코믹, 드라마를 적절히 버물리는 데 성공한다. 그는 대극적인 감정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기술과 자신만의 철학이 있기에,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