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덕골 이선생 Jun 29. 2024

생명을 보듬고 키웁니다

[기묘 일주]

2009년 겨울, 서면 한가운데 검은 니트 차림의 D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나는 강력계 형사 D와의 만남이 흥미로웠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궁금증을 쏟아냈고, 친절한 미소로 응대하는 그의 태도가 좋았다.


D는 점심이나 먹고 가자며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하얀 거품을 제거하는 그의 손길이 바빠졌. 그는 밥을 먹자마자 영화 구경 자며 데이트를 연장했다. 영화광이었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노인과 소의 우정을 그린 <워낭소리>를 관람했다. 영화 후반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웠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D였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오는 돌아오는 길은 행복다. 정돈된 거실, 다듬어진 이불, 인형 같은 아들을 만들어준 D가 고마웠다. 그는 살림아니라 육아에 프로였다. 바쁜 나를 대신해 학부모상담, 생일파티, 교통지도 모임에도 참석했다. 가끔 학부모들을 만나면 "○○이 아버님 잘 지내시죠? 뵙고 싶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물상이 귀를 쫑긋 세우고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재빠르다. 야생화처럼 버티는 근성을 가지고 있어,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대기만성으로 이룬다. 순박하고 부드럽지만 의심이 많으며 명예를 중시 여긴다. 역마가 강해서 이사를 자주 하거나 직장(부서) 이동이 잦다. 아니면 투잡 쓰리잡으로 다방면에 능력을 가진 재주꾼이 많다. 특히 생명을 키우고 보듬는 일을 잘한다. 가끔 특이한 행동과 말을 해 주변을 놀라게 하는데, 말 그대로 기묘한 사람들이다. 다만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스케일이 작아, 한 가지에 집중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또한 이성 간의 오해로 인해 배우자와 갈등이 생길 수는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집에도 유행어처럼 쓰는 말이 있다. 아빠 어디 갔어? D는 한시도 엉덩이를 붙여놓지 않는다. 자칭 집사라 부를 만큼 부지런한데, 구석구석 일을  하이에나가 따로 없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동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 선배들의 캐스팅 제안을 받는다. 나는 부서 이동이 잦은 그에게 "공무원이 안 됐으면 어쩔 뻔했냐"며 핀잔 섞인 잔소리를 한다. 그는 취미생활도 남다르다. 테니스, 캠핑, 사진, 색소폰, 커피 등 관심 분야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특출나게 좋아하는 게 따로 없다.



D는 가끔 엉뚱한 생각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종종  떠오르이미지를 그림으로 남겨 톡으로 보낸다. 뿐만 아니라 분장쇼, 김밥 콘테스트 등 창의적인 아이템을 개발해 가족만의 이벤트를 만든다. D는 관성(권위, 시스템)이 많은 사주이지만, 시스템에 적응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묘일주에다 월주 편재(재물, 융통성)와 식상(에너지, 표현력) 덕분에 갑갑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기묘일주다. 그래서일까. 우리 부부는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잘한다. 유기식물센터를 자칭하며 외면받은 식물을 데려와 정성껏 살린다. 죽지 않고 살아준 것도 고마운데, 분양까지 하게 돼 행복이 두 배.  년 전 사무실을 주택으로 이전한 뒤 작은 텃밭을 마련했다. 상추, 깻잎, 고추 등 야채를 자급자족한 지 3년째, 올해도  수확이 실망스럽지 않다. 


기묘 일주는 이것저것 잔재주가 많고 엉뚱한 말과 행동을 , '기묘한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는. 행동반경이 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분자분하고 섬세하여,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다보다 보니 결과물을 얻지 못할 때가 있다. 끈기가 부족하지만 파고드는 근성은 있으니, 한 분야에 몰입하면 좋을 것이다.


기묘 일주의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릇이 작다", "스케일 키워보라"는 말은 아껴두자. 그들은 넓은 세상과 호흡하기보다 작은 세계와 만나는 게 행복한 사람들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만, 주변에 작고 소중한 것들을 아끼고 보듬는 게 좋을 뿐이다. 호기심을 충족하며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있으, 묵묵히 응원해 주면 좋겠다.


♡ 일주 찾는 법: 만세력 앱을 깔고, 연월일시(음력ㆍ양력 구분)를 입력하면 4주 8자가 출력된다. 연주-월주-일주-시주라는 4가지 기둥 중에 일주(본원)에 해당하는 글자를 찾아 일주론에 맞춰 본다.







이전 06화 묵묵히 제 뜻을 펼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