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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Feb 24. 2019

[임신일기 #7] 7주차 3일째 - 두통

조금만 피곤해도, 약간의 스트레스에도

2018.12.23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잦아졌다. 냄새, 소음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금만 신경이 쓰여도 지끈지끈 두통이 온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시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몇 시간 두통이 왔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첫 심한 두통은 고기 냄새 때문이었다. 고소한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서 삼겹살과 항정살을 샀다. 아무래도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심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신랑이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날이 추워 환기는 시키지 못했다. 구우면서 먹으면 냄새에 더 괴로울까봐 부엌에서 치지치직 굽고, 상을 차렸다. 삼겹살, 항정살, 갖은 쌈채소, 김치, 오이지, 밥이 상에 올랐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고기가 먹음직스러웠다.


먼저 삼겹살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윽..... 입 안에 돼지고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간은 적당히 짭쪼름하게 되어 있었고, 후추도 찹찹 뿌려놓은 고기였다. 방금 입에 넣었는데 이미 배 부르게 먹은 것처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채소랑 함께 먹으면 좀 괜찮지 않을까? 왼손에 상추를 하나 올렸다. 항정살 한 점, 그 위에 김치도 한 점 올렸다. 동그랗게 싸서 한 입에 쏙 넣었다. 이번에는 냄새가 좀 덜 나는 것 같았다. 꼭꼭 씹고 있는데, 아뿔싸! 갑자기 육즙이 주욱 흘러나왔다. 그 다음은... 또 다시 돼지 고기 냄새, 항정살 특유의 기름진 냄새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신랑이 애써 구운 성의를 봐서라도 좀 더 먹자.’, ‘뱃속에 아이를 위해서도 좀 더 먹자.’


그런 생각으로 꾸역꾸역 먹었다.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두통이 조금 심해지니 메슥거리며 입덧 증상이 시작되는 듯 했다. 평소 먹는 양에 비해 절반도 먹지 못했지만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이정도면 만족이다.




온 방안에, 거실에, 부엌에 남은 고기 냄새가 그제서야 인식이 되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집 전체의 창을 열었다. 너무 추워서 보일러도 틀었다. 30분은 환기를 시킨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전혀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선풍기를 꺼내 틀었다. 강제로 환기를 시키자! 양말을 신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그렇게 30분은 더 전쟁을 치룬 것 같다. 돼지가 내 온 몸을 돌아 뇌 주름까지 구석구석 점령 해 버린 듯 어지러웠다.


엄동설한에 한 시간은 환기를 시켰지만, 안타깝게도 돼지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놈의 돼지 냄새는 3일이나 갔다.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두통은 계속 되었다. 두통이 있으니 입맛도 없고 헛구역질이 계속 되었다.





소음에 따른 두통도 지독하다. 우리 집 아랫집에는 여자 아이 2명이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은 활달하고 장난끼가 넘쳐 소리를 꽥꽥지르거나 공룡 발걸음으로 뛰어다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5년이 훌쩍 넘은데다 층간 간격이 겨우 한 뼘 정도로 좁아서 방음에 배우 취약하다. 윗 윗집에서 돌리는 청소기 소리도 벽을타고 들리는 정도다. 그러니 아랫집 아기공룡 아가씨들의 신나는 놀이시간은 당연히 우리집과 공유된다. “아빠~~~~~!!!!”를 크게 외쳐 부르거나, 꺄르륵 소리, 캐롤 부르는 소리, 심지어 대화내용, 노래 가사도 다 들린다. 신기한 것은 어른들 소리는 안 들리는데 아이들 소리는 정말 잘 들린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1층이라서 아이들 뛰는 것을 단속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집에 이사오고 나서 알았다. 1층 소음이 윗층에 다 들린다는 것을.


임신을 하고 난 이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는데, 아이들도 시도 때도 없이 소리지르고 뛰어 다니다 보니 자다가 소음에 깨는 경우가 잦아졌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깨니 두통이 생겼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난 날도 아이들이 뛰는 통에 집안이 방방 울리면 두통이 시작되었다.


스트레스! 이게 바로 두통의 근원이었다. 냄새,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 수면 부족에 따른 피곤함. 신경이 예민해지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쳤다. 3M 귀마개를 끼고 책을 읽기도 했다. 귀마개는 소리는 막아주지만 아랫층 아이들 뜀박질로 인한 집안 울림은 막아주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이 뛰면 엄마 집으로 피신을 갔다. 어떻게 해서든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었다. 예민한 내 마음이 잘 정돈되지 않고 항상 뾰족해져 있으면 아이에게 좋을리가 없으니까.




16주가 지난 지금은? 입덧도 끝났고 냄새에 예민하던 것도 거의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랫층 소음은? 우리 아이도 언젠가 저렇게 날뛸테니 이해해주자는 마음으로 견디고 있다. 나는 아직 내가 가장 중요한데, 아이를 위해 참고 배려하는 다정한 엄마가 되야하는 순간이 오겠지. 우리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도 생길 수 있다.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난 후 지끈지끈한 두통이 사라졌다.


다 마음 먹기 달린 것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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