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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Feb 06. 2023

남탓만 해서는 나아지지 않지.

내 문제를 직시하는 연습.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직면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매일 이 문제에 고민하고 있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데드라인에 일을 해내거나 결국 놓치는 일도 많다. 이런 일은 진료실 환자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특히나 산부인과 과의 특성 상, 현실을 부정하고 감정을 의료진에게 투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C씨는 20대 후반의 엣된 얼굴을 가진 분이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표정은 울상이었는데 의아한 나는 어쩐 일로 진료실에 방문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전 남자친구가 관계를 할 때마다 자꾸 조이라고 해서요. 질 탄력을 좀 확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직 출산도 안한 친구가 질이 이완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말 선천적으로 결체조직이 약한 분들이 드물게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 주저하지 않고 질의 압력과 질강 부피를 측정하였고 내진을 해서 다시 확인을 하였는데,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아주 건강한 골반저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질 점막이나 근육도 아주 좋았다. C는 전 남자친구의 이런 발언에 완전히 꼳혀 있었다.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질 필러를 하겠다고 해서 결국은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뭐 병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긴 하다만. 어쨌든 이 환자는 덕분에 몇 년간 고통받던 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직접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전문가를 찾은 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C 환자처럼 직접 문제에 용기 있게 마주하고 직면해서 해결하려는 환자들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곤 하니까. 


간단한 예를 들긴 했지만 고통스런 마음에 제대로 직면하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마음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고통에 빠진 마음을 찾을 수가 있었겠나. 불가능한 일이지. 결국 모든 부자유와 고통은 자신의 부자유와 고통에 직면하지 않는 비겁함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무섭고 징그러워도 우리는 고름이 철철 흐르는 상처를 바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에게는 작으나마 치료의 희망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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