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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Sep 02. 2022

우울증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회사에서 더 이상 일을 미룰 수 없게 되었을 즈음에, 여러 업무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내가 하던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양의 3배 넘게 소화해내어야 했기에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했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지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디 다른 곳에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몇 주를 그렇게 바쁘게 보냈다. 어느 순간 문득 이전에 비해 머리카락이 2,3배로 빠지고, 살이 3kg가 빠진 걸 알게 되었다. 한 달 사이에 체중의 5% 이상 급격하게 빠진다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던데, 나는 2주 동안 6%가 넘게 빠졌다. 주말을 보내고 나니 1kg가 더 빠졌다. 전체 몸무게의 8%가 15일 만에 빠졌다. 아마 기존의 무력감과 회사에서의 업무과중이 겹친 게 아니었을까.


잠을 잘 못 자게 되었다. 원래도 썩 잘 자는 편도 아니고, 악몽도 종종 꾸는 편이라 잠에 민감한 편이었다. 조금이라도 잠을 잘 자기 위해 매일 침구를 청결하게 유지했고, 잠에 들기 전에 음악을 듣거나 간식을 먹는 등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최근 2주 동안은 매일 평균 3~4시간을 잤다. 좀 길게 잤다 싶으면 5시간이었다. 고강도 운동을 할 때는 피곤함이 누적되었지만, 수면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곤함은 쌓이기만 할 뿐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악몽을 꾸는 빈도도 높아졌다. 심박수도 제멋대로였다. 밥은 거의 먹지 못했다. 아침은 당연히 안 먹었고 점심도 평소 먹는 양의 반으로 줄었다. 저녁은 거를 때가 많았다. 물도 잘 마시지 못했고 사람들과는 점점 더 거리를 두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정말 친한 극소수의 몇 명과만 대화를 했다. 나중엔 그마저도 줄였다.




사실 이대로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망치는 것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존재라면 그 정도의 자유는 내게 허락된 게 아닐까.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울증 자가진단 검사를 발견했다. 검사 결과, 우울 수치로 보았을 때 최고치 60점을 기준으로 30점 이상이면 병원 방문을 권장했지만, 나는 52점이 나왔다. 물론 간단한 설문 테스트였고 정확한 척도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류의 테스트를 해보아도 보통 저 정도 점수가 나왔다. 유튜브에서 우울증을 검색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말하고 있었다. 아, 나는 우울증이었구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본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진료를 받아 상황을 개선하려 하다니.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우울증인가?', '약을 먹고 싶은데 두려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사고가 아니었다. 우울증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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