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으로 깨닫는 순간

#2 아빠가 자라는 오늘들 - 04

by ㅇㅅㅅㅇ

'사랑'과 '사랑해'는 같아 보이나 실은 다르다. 단순히 명사와 동사의 차이만은 아니다. '사랑'은 정신, 생각, 감정에 속하는 단어라면, '사랑해'는 표현, 행동, 실천에 속하는 단어다. 두 단어는 본질적으로는 같을지 모르나 담는 그릇이 다르다. '사랑'은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고, '사랑해'는 '표현'이라는 그릇에 담는다. 둘의 가치를 두자면 '사랑'이 먼저다. 본질적인 가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마음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마음에 담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바로 '표현'이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할 때 전달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해'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사랑'이다. 그 표현은 다양할 것이다. 말, 글, 노래, 춤, 영상, 행동 등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마음이 깊을수록 '사랑해'라는 표현은 진실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티가 난다. 쉽게 마음을 들킨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전달된다.


시아에게 그랬다. 어제보다 깊어진 사랑은 오늘 더 티가 나게 표현되었다. 따뜻한 미소로, 포근한 품으로, 친근한 토닥임으로, 함께하는 시간으로, 동화책을 읽어줌으로, 음식을 먹여줌으로, 때로는 '안돼'라는 말로 사랑은 전달되고 있었다. 사실 시아는 그것이 사랑인지 모를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 수 없을뿐더러 그 의미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지 성장발달 상의 미숙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갖는 설명하기 어려움 때문이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에 담겼을 때, 다채롭고 신비롭게 표현된다. 아마 수천, 수만 가지 표현들로 전달될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수천, 수만 가지의 '사랑해'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전달된다. 사랑은 그렇다.



사랑을 사랑으로 깨닫는 순간


그러나 사랑을 사랑으로 깨닫는 순간은 사랑을 받았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어 줄 때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고 표현할 때, 우리는 그동안 사랑인지 모른 채 받았던 수많은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 사랑의 조각들이 맞추어져 비로소 '사랑'임을 알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시아에게 사랑을 표현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그저 받기만 했던 수많은 표현들과 행동들이 비로소 사랑이었음을 말이다. 특히 부모님의 행동들, 그동안 다 이해하지 못했던 그 표현들이 주체할 수 없어 마음에서 삐져나온 사랑의 표현들임을 깨달았다.


사랑은 그저 당연하게, 사랑인지 모른 채, 전해지고 있다. 그것이 사랑인지 몰라도 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시아에게 자연스럽길 바란다. 그래서 시아가 자연스럽게 사랑받고, 또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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