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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랑에 대한 질문에 답할 차례

혼독함공_독서일지

by 김선하 Feb 21. 2025




친구가 떠나는 날, 나에게 남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여자는 울고 있다" 는 #파트릭모디아노 소설 <#어두운상점들의 거리>로부터 온 것이었다. 몇 개의 단어와 소설 한 권이 오랫동안 나에겐 삶과 사랑의 화두였고 마침표를 찍기 위해 결국 나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작년 가을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끄적거리다가 이제는 그만 하자, 다짐했다.



그런데 다시 내 손에 파트릭 모디아노라니.



<#기억으로가는길> #프랑스문학전문출판사_레모

#번역에진심인_윤석헌



어쩌려고 또 내 기억을 꺼내버렸는지, 물음에 답할 수 없는 그 기억을 어쩌려고 다시 끄집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노트북 누런 화일을 펼친다.

 

친구가 아쉬움을 던지며 나에게 건넨 그 말을 나는 계속 더듬는다. 내가 놓쳤던 기억을 주워 담는다. 조각난 기억을 주워 퍼즐을 맞춘다. 친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친구를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는 친구를 보내고  드디어 내가 자유롭기 위해.



#조급해진다. 이 퍼즐을 빨리 완성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더 꿰어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잡고 흔들어야 내 기억이 퍼져나가고 모아질지. 일단은 읽기로 한다. 그리고 쓰기로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쓰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겠지. 그리고 마무리 되겠죠.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마음을 편다. 다가올 봄날을 위해서.



망각은 기억의 다른 이름이 된다.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혹은 완전히 잊혀지길 위해,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 당신을 옭아매는 기억은 무엇인가?



일관성 없어 보이는 디테일이 하얀 종이에 싸여갈수록 훗날 그가 상황을 밝혀낼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쓸모없어 보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12

때로는 하나의 디테일이 다른 디테일을 데리고 온다. 마치 해류가 부패한 물풀 더미를 데려오듯 첫 번째 디테일에 달라붙어서. 그러고 나면 지형이 더 멀리 있는 기억들을 깨운다. 이제 그는 해골과 생 라자르의 카페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13



그 시절 그는 파리의 빛 속을 끝도 없이 걸어 다녔다. 그가 마주하는 사람들과 거리에 생생한 인광을 전하는 빛이었다. 조금씩 늙어가며 그는 그 빛이 약해지는 것을 알아챘다. 빛은 이제 사람들과 사물에 진짜 면모와 진짜 색깔을 남겼다. 일상의 흐릿한 색깔들을. 그는 밤의 구경꾼으로서 자신의 주의력 또한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이 세상과 이 거리들이 더는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68



보스망스는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잠시만요 ... 곧 돌아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종종 되뇌었다. 그 말들은 매번 그의 인생의 단절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가 트루네 강변가에서 홀로 보냈던 밤들, 레스토랑 유리창 속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들의 이미지, 그리고 자신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는 동안 뒤에서 쫓아오던 미셸 드 가마의 이미지까지, 이 이미지들은 그의 꿈속에 두 번 세 번 정도 출몰했다. 그다음에 몇 해 동안 몇 번의 유사한 도주와 단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가 종종 반복해 말했던 기억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농담은 충분해” 혹은 “관계를 끊어야만 한다”라는 문장으로. 그리고 그의 인생은 오랫동안 이런 단속적인 리듬을 따랐다. 153



그들의 삶은 이제 책의 페이지 사이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현실 속에서 파리의 거리에서 그들을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름이 왔다. 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여름. 어찌나 빛이 투명하고 강렬한 여름이었는지 그 유령들은 결국 사라져 버렸다. 176



“크라웰 부인은 정말 잘못 엮였어요. 그래서 일을 처리하기가 복잡해졌어요.” 보스망스는 전화를 끊었다. 모든 것은 결국 지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날 아침 그는 원고의 203페이지에 끝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이제 그는 예전에 그가 아니었다. 그가 글을 쓰는 동안, 그리고 책의 페이지가 이어지는 동안, 그의 삶의 한 시기가 녹아내렸거나, 압지처럼 페이지들 사이로 흡수되었다. 183



옮긴이의 말 : 그는 오래전의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다. 거미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시를 던져 그 실을 붙잡고 나오는 것임을 이제 그는 안다. “상황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 그는 소설을 쓴다. “유령들을 완전히 무해하게 만들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책은 그들의 소설 속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작가의 말 : 망각이라는 거대한 흰 종이 속에서 흰 종이 앞에서 반쯤 지워진 단어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소설가의 사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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