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너머의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하여
법은 차갑지만 그 너머에는 무엇보다 뜨거운 사람, 삶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건을 수임하면 기록이라고 부르는 사건 자료들을 모두 종이로 출력해 갈색 큰 종이봉투에 넣어서 보관한다. 커다란 사건 봉투 앞 면에는 법원 이름과 사건번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그 안에는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온갖 서류들을 넣어둔다. 그러니까 손으로 잔뜩 사실관계를 적어놓은 노트, 증거로 내고 싶다며 가져온 사진, 병원에서 떼 온 진단서, 너무 답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왔다는 의뢰인의 A4 용지 몇 장에 달하는 심경 고백, 이런 모든 종이들이 봉투 안에 담긴다. 사건을 배당받고 의뢰인들이 남기고 간 자료들을 받아 들어 사건 봉투 안에 들어있는 자료를 책상 위에 와르르 쏟아낸다. 키보드 위에 널브러진 자료들을 되는 대로 집어 들고 하나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서서히 아무 온기 없던 종이 안에 담긴 사람냄새나는 이야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둘도 없는 친구였죠. 중학생 때부터 그렇게 친했는데 저는 아직도 그 친구가 이해가 안 돼요. 이렇게 제가 여기까지 올 일인가 이게.” 회의실로 찾아온 의뢰인은 사실관계를 이야기하다 자꾸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말을 하다 멈추고 다시 하고를 반복했다. 의뢰인은 친구와 어릴 적부터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왔다고 했다. 그러다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창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함께 캠핑을 다니기 좋아했던 의뢰인과 친구는 캠핑 콘셉트의 음식점을 열어보기로 했다. 회사 일이 잘 맞지 않아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던 찰나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처음 몇 년은 일이 잘 되지 않아도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라며 일을 마무리하고 술 한잔을 기울이면서 허허 웃고 나면 다시 다음 날 가게를 열 힘이 생겼다고. 코로나로 가게가 어려워지고 손님이 몇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자 친구는 가게가 생각보다 잘 안 된다며 의뢰인에게 돈을 한꺼번에 몇 달 치 모아서 주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 부탁을 했단다. 이번 달 가게 운영비로 들어갈 돈이 많이 필요하니 조금만 사정을 봐 달라고. 의뢰인은 가게를 운영하느라 바쁠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돈이 급한 게 아니니 천천히 줘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그저 친구가 무리하여 몸이 상할까 걱정이 될 뿐이었단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 두 달, 세 달이 넘어가고, 반년이 넘어가던 어느 날부터 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계속되는 의뢰인의 연락에 친구가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꺼내 보이며 의뢰인은 돈을 못 받은 것도 가게가 망한 것도 다 괜찮은데 어떻게 20년 지기 친구가 이렇게 변할 수 있냐고, 자신은 돈보다 친구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의뢰인인에게 증거가 이렇게 충분하고 계약서에 수익 정산 비율이 명확하게 쓰여 있으니 소송은 잘 될 것 같다고 못 받았던 수익금은 다 받아오자고 말할 수 없었다. 전부 승소를 한다 해도 그리하여 소송비용까지 모두 피고가 지급하라는 판결문을 받는다 해도 피고 란에 형제 같았던 친구의 이름이 적힌 판결문을 받아 든 의뢰인의 마음이 나아질 수는 없을 거란 걸 알기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피고가 이 소송에서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며 너무 오래 다투지 않기를,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정한다며 청구인낙을 하거나 조정으로 넘어가 조금만 갚을 시간을 달라며 용서를 구하면서 조정이 성립되기를 기도했다.
“큰 형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힘들게 어머니 가시는 날까지 병상에서 2년을 꼬박 병시중을 했는데 큰아들이 직장도 없이 혼자 산다고 그 집을 다 줘버리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나는요. 열심히 아득바득 살아서 여기까지 온 나는 뭐예요. 이럴 거면 나도 직장 다 때려치우고 굶으면서 살았겠죠. 상속이고 뭐고 검색해 보니 일부는 제 몫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데 제 마음 같아서는 다 가져오고 싶어요.” 의뢰인은 회의시간을 가득 채워 자신이 어머니의 간호를 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참을 토로했다. 그래도 자신이라도 어머니를 간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큰 형은 일을 그만두고는 집에만 있으면서 집안일조차 거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이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간호를 하며 형의 생활비까지 챙겨야 했다고. 그런데 그런 형이 안쓰럽다며 자신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넘겨버린 어머니가 원망스러운데 이걸 원망하는 본인이 싫다며 그럼에도 자신의 몫이라도 가져와야 마음이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한참을 마음을 토로하고 의뢰인이 떠난 자리.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한참을 생각했다. 홀로 남아 경제활동도 하지 못하는 아들이 걱정되었던 어머니도, 어머니가 자신의 앞으로 집을 남겨준다는 걸 거절하지 않았던 큰아들도, 형을 상대로 자신의 몫을 찾아오겠다며 소송을 하고 어머니를 원망하는 의뢰인도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외뢰인도 한 살 위인 형과 장난치고 웃고 뛰어놀던 시간이 있었겠지. 어머니의 병상에서 곁을 지키며 같이 웃는 순간도 한 번 즈음은 있었겠지. 누구도 탓할 수 없이 틀어져버린 마음들 속에서 이 소송을 이기면 의뢰인의 마음은 나아질까 한참을 생각하다 스스로 답을 하지 못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내 방으로 돌아가 소장을 쓰기 시작했다. 의뢰인이 승소를 해서 자신의 몫을 찾아오면 그때는 야속하게 느껴지던 어머니도, 그저 밉기만 했던 형도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까.
“제가 아무래도 이제는 정말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남편이 아이를 놔주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떡하죠.” 세 살배기 딸을 둔 의뢰인은 오랜 시간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한 번씩 화가 나 그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날이면 골프채를 휘둘렀다고. 휘두르는 골프채에 가전제품이 깨지고 그릇이 산산조각 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향해 휘두른 건 아니라고 뭔가 그를 변호하려는 듯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느 날 남편이 휘두른 골프채에 그릇이 깨져 아이가 있는 쪽으로 유리 파편이 튄 걸 본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의뢰인은 재산분할이야 혼인 기간이 짧으니 재산을 많이 가져오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만큼은 꼭 본인이 키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여느 이혼 사건과 같은 소송이겠구나 하고 의뢰인을 돌려보낸 후 소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난 후 며칠 뒤 의뢰인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이혼 소장을 내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짐을 옮겨 남편과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아이를 마음대로 데려갔다며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로 의뢰인을 고소했단다. 의뢰인은 남편을 무고죄로 고소를 해야겠다며 아이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한참을 울었다. 의뢰인을 달래 보려 아이는 꼭 데려오자고 그러려면 남편이 얼마나 나쁜 아빠였는지 적어야 한다고, 아이를 위해서 왜 아이가 남편과 함께 자라면 안 되는지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의뢰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오려던 찰나 상대측 답변서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다. 의뢰인에게 보여주기 전에 먼저 빠르게 내용을 읽어 내려간다. 상대방이 쓴 답변서 속 의뢰인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니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의뢰인이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웠는지, 남편의 폭력이 계속되는 날에도 아이만큼은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혼을 하면 아이에게 남편이 가진 능력만큼 마음껏 지원해 줄 자신이 없어 아이만큼은 자신처럼 가난하게 크지 않기를 바라 얼마나 참고 버텨왔는지 따위의 이야기는 흔적도 없었다. 답변서 속에서 의뢰인은 그저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고생시키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파렴치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이 답변서를 의뢰인에게 뭐라고 말하며 전해야 할까 입이 떨어지지 않아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해가 졌다.
이번 소송만큼은 꼭 이겨야겠다고 다 떠나서 의뢰인이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향한 마음만큼은 얼마나 진심인지 그것 만큼은 밝혀내야겠다고 자꾸만 서면을 쓰는데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문득 의뢰인의 딸아이가 의뢰인의 이 선택을 훗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여 형편이 넉넉지 못해 자꾸만 작아지는 날이 오더라도 왜 나를 데려 왔느냐며 원망하지는 않기를, 엄마의 그러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렇다고 하여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로 자라지만도 않기를. 이 소송의 끝이 어떠하든 의뢰인도 딸아이도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법은 차가운 언어로 정제되어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쓰여 있지만, 법을 다루는 사건 안에는 사람냄새나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려 시시비비를 가려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상처를 회복하고,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하다가 그걸 다 해낼 수 없어 그나마 최소한의 무언가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법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것이나마 지켜내도록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법이 어루만질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소송이 끝난 후 끝내 사람으로 사랑으로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