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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모자란 변호사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by 조일연

“변호사는 감정적이어서는 안 돼.” 법 조문이나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에 담긴 문장들은 하나같이 차갑다. 때로는 차갑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변호사가 쓴 서면은 법률문서가 아니라 무슨 에세이 같아.” 갓 변호사가 되었던 해에 들었던 말. 변호사에게는 글을 못 쓴다는 모욕적인 핀잔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정돈된 논리적인 언어로 써 내려간 글. 이런 글을 변호사로서 잘 쓴 글이라고 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떠올리면 마치 AI처럼 냉철한 이성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한 사건이 끝나면 깔끔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 또 그다음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일 잘하는 변호사를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위해 싸워서 이겨주는 변호사”라고 한다. 변호사들은 좋은 변호사를 “어떻게든 사건을 수임해 내는 변호사”라고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나는 모자라도 한참 모지란 변호사였다.


음주운전 사건을 배당받았다. 술을 마신 채로 운전을 했고 피해자를 차로 치어 다치게까지 했으니 이건 무죄 주장이고 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 빌어야 한다. 경찰을 통해 어렵게 구한 피해자 측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의뢰인의 부모님이 통장을 탈탈 털어 구해볼 수 있다는 금액은 300만 원. 의뢰인이 마신 술이나 피해자가 다친 정도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어 보인다. 피해자 가족의 연락처가 적힌 포스트잇을 한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 수화기를 차마 들지 못한 채 한 시간이 흘렀다. “조변, 피해자 쪽이랑 합의 됐어요?” 메신저 미리 보기 알림이 모니터 아래쪽에서 쓰윽 고개를 내민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통화해 보겠습니다.”


후.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입술을 앙다문 채 수화기를 들어 다다다다 전화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이 악물고 차라리 빨리 해치워버릴 요량으로. 신호가 한 번, 두 번. ‘그렇지 받지 마라. 받지 마. 한 번만 더 신호가 가면 끊어야지.’ 세 번. “여보세요?” 하. 피해자 어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법무법인 어디 어디 소속 조일연 변호사라고 합니다. 갑자기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통화 가능하실까요..?” 화상통화도 아니건만 나는 엉덩이를 앞으로 쭉 빼고 의자에 늘어져 앉아있던 자세를 냉큼 바로 고쳐 수화기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렇게 잘못을 해놓고 말이야! 합의금이라니!?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얼마 줄 건데요!!??” 아니요 선생님 돈이면 다 되는 건 아닌 건 맞지만 이 돈이면 정말 안 될 거란 건 압니다요. 차마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나는 의뢰인 가족이 얼마나 형편이 어렵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고,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모으고 계신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연신 몸을 낮추었다. 마치 내가 교통사고를 낸 것만 같았다. “저.. 사…사..삼..백” “아니 지금 사람 가지고 장난쳐요!? 애를 이지경을 만들어놓고 사암백!? 변호사 비용을 얼마를 써놓고!? 다시는 전화하지 마요!!”


툭 끊긴 전화기를 들고 한숨도 내쉬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조변, 의뢰인 쪽에 연락해서 합의금 더 준비해 보시라고 해요. 다음 주까지 합의해야 돼.” “아, 네!” “제가 급한 대로 가게 청소 자리라도 몇 개 더 알아보고 있어요. 친척들한테도 좀 빌리고 있고. 근데 도저히 돈을 구할 데가 없는데 어떡하죠…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가불이라도 해볼게요.” 나는 의뢰인 가족에게 내가 다시 피해자 쪽에 전화를 걸어 이번 한 번만 이 금액으로 합의서를 써 주시면 안 되냐고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어머니도 조금만 더 구해봐 달라고 약속을 해버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괜히 애꿎은 사건 기록만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를 반복하다가 어떻게든 반성한다는 의견서라도 더 눌러써보자고 변호인 의견서 파일을 열었다. 평온하게 길을 가다 갑자기 자신을 덮친 차에 부딪쳐 누워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떠올린다. 내 부모님이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돈 삼백만 원에 용서한다는 합의서를 써 줄 수 있었을까. 아니 못 할 것 같아. 나는 한 번 더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추가로 구해가며 돈을 모으고 있다는 의뢰인 어머니에게 좀 더 일을 해서 돈을 모아보셔라 말하지 못했다. 이미 무리에 무리를 더하고 있을 사람에게 마치 내가 돈이 없어서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돈을 더 드릴 테니 용서를 해달라고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의뢰인의 어머니에게 끝내 내가 한 번 더 설득해보겠노라고 내키지도 않는 약속을 해버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괜히 변호인 의견서만 썼다 지웠다.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다 해가 졌다. “조변 합의 됐어요?” 나는 메신저에 답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건이 배당되었다. 이미 한참 진행되던 사건의 담당 변호사님이 퇴사를 하며 나에게 넘어온 사건이었다. 사기. “간단한 사건이에요. 마지막 공판기일만 남았어요. 마무리만 잘해줘요.” 파트너 변호사님의 말 대로 받아 든 기록봉투는 지나치게 가벼웠다. 얇은 기록을 받아 들고 공소장부터 읽기 시작한다. 의뢰인이 가게를 운영하다 일이 어려워져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끝내 갚지 못한 사건. 의뢰인이 돈을 빌릴 때에는 이미 갚을 능력도 갚을 생각도 없었다고 보아서 돈을 빌린 행위 자체가 사기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미 사건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하며 의뢰인은 돈을 갚을 마음이었다는 걸 한껏 주장해 둔 사건. 돈을 갚을 마음이었다는 건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기 너무 어려운데 왜 이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입증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마지막 공판기일은 며칠 남지 않았고 그저 나는 최후변론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장 앞에서 의뢰인을 만나 법정 안으로 들어간다. 오후 5시를 넘겨 우리 사건은 맨 마지막 사건이다. 의뢰인과 나만 방청석에 단 둘이 앉아있어야 할 법정에 저 멀찍이 법정 왼편 중간 즈음에 한 여자분이 앉아있었다. 만삭의 몸으로. 뭐지. 의뢰인과 아는 사람일까. 딸이라고 하기엔 모르는 사람 같은데. 판사님은 우리 사건번호를 부르고 의뢰인과 나는 법정으로 나가는 바를 밀고 앞으로 나갔다. “변호인 최후변론 하세요.” 나와 의뢰인은 준비해 간 서류를 읽어 내려가며 최후변론을 했다. 피고인은 정말 돈을 갚을 생각으로 돈을 빌린 것이고 단지 그 후에 형편이 어려워졌을 뿐이라고. 재판은 간단히 끝났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거기 누구세요?” 판사님은 법정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만삭의 여자분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아 저.. 판사님 저는 이 사건 피해자인데요..” ‘망했다.’ 여자분은 만삭의 몸으로 힘겹게 일어나며 말했다. “아이고 그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앞으로 나오세요.” 여자분은 법정 앞으로 나와 증인석에 앉아서 본인이 얼마나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지. 의뢰인에게 돈을 받지 못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담담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끝났다 이 재판.’ 나는 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황에 망했다는 생각만 하며 의뢰인과 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보고 있었다. 여자분의 말이 이어질수록 우리 둘의 고개는 더 더 바닥으로 향했다. “아니 이렇게 큰 로펌을 써서 비싼 수임료를 내고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차라리 그 돈이라도 저한테 갚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판사님. 저는 그게 괘씸해서 용서를 할 수가 없어요.” 나는 고개를 더 푹 숙여 검은색 구두의 둥근 앞코만 쳐다보고 있었다.


판결 선고일. 여느 변호사처럼 나도 선고일에는 재판에 가지 않고 대신 법정에 나가준 직원분을 통해 선고 결과를 전해 들었다. 법정구속. 마지막 공판기일에라도 입장을 바꾸어 사기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용서를 구해야 했을까. 마지막 공판기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의뢰인의 모습이 떠올라 죄책감에 모니터만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사무실 밖을 나가 근처를 몇 바퀴나 빙빙 돌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파트너 변호사의 메신저가 모니터 아래에서 쓰윽 올라온다. “조변님, 판결문 나오면 가지고 의뢰인 구치소로 접견 다녀오세요.” 응? 아니 지금 법정구속된 의뢰인을 만나러 사기 혐의가 인정된다는 판결문을 들고 구치소까지 찾아가라고? “아 저 꼭 직접 전해드려야 할까요?” “아니 가서 만나서 항소심 우리랑 진행하실 건지 얘기해 봐요. 갈 때 항소심 수임계약서 챙겨가고.” 와 이게 지금 뭐지. 메신저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접견 날. 동부지방구치소 앞에서 택시가 멈췄다.


“손님 도착했어요.” “아, 네” 좀처럼 내키지 않는 몸을 일으켜 택시에서 내렸다. 아 도저히 못 들어가겠어. 동부구치소 근처 특유의 휑한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걸으며 근처의 높은 빌딩 건물을 빙빙 돌았다. 접견 시간은 다가오고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아 한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야지. 아니야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한 블록 떨어진 편의점으로 들어가 팩소주를 꺼내 들었다. 술 한 모금에도 온몸이 시뻘게질 만큼 알코올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이건 인간이 맨 정신에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시뻘게진 채로 구치소에 들어가면 뭔가 저 문을 나도 못 걸어 나올 것 같아 한 모금을 빨아 마시고는 후 크게 숨을 내쉬고 구치소로 들어갔다. 드디어 들어선 접견실. 유리로 된 칸막이로 나눠진 접견실은 작은 책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의뢰인과 마주 앉는다. 먼저 도착한 나는 안쪽 자리로 들어가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더듬어 책상 밑에 있는 비상벨 위치를 파악했다. 마침 경위들과 가까운 방이어서 여기서 비상벨을 누르면 나를 구하러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왼손은 책상 위에 자연스레 올리고 오른손은 비상벨 근처에 가져다 둔 채 의뢰인을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의뢰인. 지난 재판 때 보았지만 체구가 작고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던 의뢰인은 유독 더 작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의뢰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인사를 건넨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는 의뢰인을 앞에 두고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판결문을 꺼내어 전달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수임계약서를 왼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괜히 눈을 마주치지 못해 애꿎은 판결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되려 목에 힘을 주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판결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힘 없이 한마디를 내뱉는 의뢰인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혹시 항소..하..실 생..각은..” 오른손을 더듬어 비상벨 가까이로 가져갔다. “네?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저는 돈이 없어요 선생님. 한 푼도 없고.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고. 아무것도 없어요. 이 변호사 비용도 무죄받아 준대서 이것도 빚으로 끌어다 쓴 거예요. 항소심이요? 그거 또 변호사 쓰려면 또 돈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의뢰인의 말에 놀라 바닥만 쳐다보던 나는 놀라 고개를 들어 의뢰인과 눈을 마주쳤다. 유독 검게 그을린 피부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르튼 손에 어떤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 눈물이 맺힌 건지 눈물이 맺힐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눈을 보며 비상벨을 만지작 거리던 오른손에 스르륵 힘이 풀렸다. 왼손으로 만지작 거리던 항소심 수임계약서를 가방에 푸욱 밀어 넣어버렸다. 이까짓 것. “선생님, 항소하세요. 항소하시고요 국선변호사 선임하세요. 그리고 항소심에서는요 꼭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마련이 되면 변호사비용으로 쓰지 말고 피해자한테 주면서 합의해 보세요 선생님. 그리고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시고 합의가 안 되면 반성문이라도 최대한 많이 써서 내보세요. 안 될 수도 있는데요. 여기서 더 변호사 비용 쓰지 마시고요 꼭 반성문 내시고 합의 최대한 해달라고 변호사한테 부탁해 보세요. 죄송해요.”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다는 말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을까. 비상벨을 더듬었던 것마저 부끄러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구치소를 나왔다. ‘시발 이게 뭐야’ 택시를 부르지 못하고 문정역까지 높은 빌딩 숲으로 가득한 차가운 동네를 한참을 빙빙 돌아 걸으며 한참을 그렇게 대상 없는 대상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참을 걸었다. “조변, 항소심은 우리랑 한대요?” 나는 그 메신저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좋은 변호사란 뭘까. 세상이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나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변호사다. 어떻게든 사건을 수임하기보다 의뢰인을 돌려보내고, 어떻게든 적은 금액으로 합의를 하자고 밀어붙이지 못하고, 감정이 흔들려 버렸다. 이런 내가 유난스럽다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작게 움츠러들 때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찾아내어 펼쳐본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어딘가 좀 모자란 변호사일지 몰라도 나만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저 나에게 맡겨진 사건이 마치 나의 가족의 일인 것처럼 마음을 쏟는 것.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 좋은 변호사가 될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마음을 쏟다 보면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마음을 쏟아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위로를 얻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계속 마음을 쏟을 것 같아. 작아지고 쭈그러드는 날에도 아직은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꾸준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내가 조금 모자란 변호사로 보일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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