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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May 25. 2020

나는 매일 시험을 본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매일이 시험의 연속이다. 

매 순간 나의 능력이 평가받고 이런 평가에 의해 내 가치가 결정되는 기분이 든다.


학창 시절에는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시험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빨리 직장인이 되고 싶었지만, 정작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그나마 시험기간을 정해서 한 학기에 두 차례 보던 시험이 이제는 조금 낮은 강도로 매일 치러진다는 것.


게다가 직장생활은 시험기간이 끝난 후 고생했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놀 수 있는 여유나 방학도 없으니 여러모로 왜 다들 졸업 후 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학점이 나오기까지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내가 시험을 얼마나 엉망으로 치렀는지 잊고 지낼 수 있다.


(그래 솔직히 시험을 치르고 있으면 '아 나는 지금 시험에 떨어지고 있구나' 혹은 '아 지금 내 답안지는 산으로 가고 있구나'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시험이 끝났다는 기분에 취해서 자기기만으로 행복함을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매일 치르는 시험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이 시험을 얼마나 엉망으로 치르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능력이 부족한지 일을 하는 내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 수 있고,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이나 상사들에 의해 매 순간 평가된다. 어쩌다 몰지각한 악덕 상사를 만나기라도 하면 시험을 치르는 족족 그 자리에서 바로 채점을 한 성적표가 날아오는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 "자네는 일을 이따위로 밖에 못하나." 


여기에서 더 악독한 사람들은 때로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대변하는 집단 전체에 대해 평가하며 그 집단 전체를 무능력한 사람들로 몰아가버린다. "내가 이래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안 쓰는 거야.” 따위의 말과 함께.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악덕 상사를 만나지 않기를 내내 기도하는 수밖에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건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내가 보기에도 내가 늘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이런 악덕 상사를 만난 것도, 누군가 나를 불러내어 "일을 그 따위로 할 테냐"라고 몰아붙인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가.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꽤나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시험을 보는 것 같은 사회생활의 특성 때문일까. 그렇다면 내가 일을 하는 이상은 이런 마음의 부담감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일까. 마음의 부담이 나의 존재가치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는 마당에 나는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고민이 이어지던 중 어느 순간 의외로 그 답이 너무나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 바로 그 나만의 악덕 상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어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를 끊임없이 다그치고 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라며 자책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은 계속 낮아진다.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울 만큼 일처리를 하지 못했을 때에는 '왜 나는 더 잘하지 못했을까'라며 나는 과연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시험은 맞고 틀린 답이라도 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정도가 있고 그 정도에 미칠 만큼 멋지고 매끄럽게 일을 처리해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목표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그 목표는 주위에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기준으로 점점 높아지고, 내가 혹여 처음에 생각했던 목표 근사치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이내 '내가 여기서 멈출 줄 알았지?'라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린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자책을 넘어서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라는 죄의식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일을 계속할 수 없다. 나 스스로 내가 악덕 상사가 되어 매일 매 순간 나에게 채찍질을 가하는데 어떻게 그 일에 애정을 쏟고 매일같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일을 하며 낮아진 자존감은 이내 연인관계를 비롯해 다른 많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를 지키고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내 마음속 악덕 상사를 내가 끊어내야만 한다.



내가 어떠하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으려 해도 내가 능력이 부족한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발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덮어두고서 그저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주어진 일을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은 하되, 나에게 완벽을 강요하지 않도록 노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누가 보기에도 엉망으로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 '이래도 괜찮아.'라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끊임없이 채찍질만 가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나만의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 했다면 적어도 일을 하는 순간에 나 스스로에 대해 평가하면서 나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고, 나를 깎아내리는 마음은 가지지 않도록 노력 하고있다.




그 사이를 지키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되었지 라며 대충 일을 처리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고, 그렇게 성실하게 열심히 해야지 라고 마음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벌써 나에게 왜 그것밖에 하지 못하냐며 역시 나는 안 된다는 생각 따위로 나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내가 내 마음을 지키면서 타인의 평가를 내 가치에 대한 평가로 환원시켜 나 스스로 화살을 주워 담지 말되, 일을 대할 때에는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오늘도 내일도 나는 그 사이 어딘가 즈음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적어도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쳐버리지는 않도록 끊임없이 내가 지금 어느 즈음에 와 있는지 나를 돌아보면서.


쉽지는 않지만, 나는 내 일도 잘하고 싶고 그만큼 내 마음도 소중하기에. 열심히 외줄 타기를 하며 균형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와 같이 각자의 일터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마음을 지켜내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우리 잘 해내 보자고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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