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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Sep 25. 2019

낙방과 낙첨, 그래도 낙담하지 않을래

같은 날 들려온 면접  낙방과 임신 실패... 그래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

채용 결과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문자가 왔지만 기대되진 않았다. 서류전형 결과는 전화로 왔기 때문이다. 실망하지는 않았다. 예상됐던 결과였기에. 다른 업무는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지만 '외국인 CEO를 통역 없이 응대할 수 있냐', '원 문과 번역본을 비교하며 제대로 번역됐는지 판단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선뜻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를 외칠 수 없었다.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했지만 못 하는 일을 잘하는 체 하는 융통성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런 업무를 해보지 않아서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혹시 공인 영어점수가 있나요?"

"최근에는 시험 본적이 없어서요..."

"입사 때 냈던 영어 점수는요?"

"XXX점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점수 아닌가요?"


딱 한 명을 뽑는 자리였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혹시 입사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녀야 하나' 김칫국 러버답게 역시나 김칫국 한 드럼을 드링킹 했던 그날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설마, 혹시... 는 무슨... 결과는 낙방.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떨어졌어. 근데 면접장을 나오면서 바로 알았어. 나의 부족함과 한계.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게 말 그대로 '뼈 저리게' 느껴진다.
석사도 하고 영어공부도 해야겠다 정말로

실로 오랜만에 너무나 낙방 이유를 듣지 않아도 납득하게 되는 면접이었다. 

낙방 소식을 들은 날은 이달의 로또 당첨 예정일이기도 했다. 로또는 매주 토요일 저녁에 당첨번호가 나오는데 로또 당첨 예정일은 또 무슨 소리냐? 이번 달 '숙제'의 결과가 나오는 예정일이었다. '생리 예정일인 내일 아침 딱 임신 테스터기를 써봐야지' 


여자에겐 '촉'이라는 것이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낌적 느낌이 오는 날이 있다. '오늘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남자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 '팀장의 눈빛이 묘하다. 저 일 나한테 시킬 것 같아', '분위기 싸한데. 뭔 일이 터질 것 같아' 백발백중...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래도 나쁘지 않은 적중률이었다. 이번 달, 그 촉이 마구 올라왔다. 


피곤해도 너무 피곤했다. 저질체력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7시만 넘어도 피로가 몰려왔다. 시도 때도 없이 오한이 몰려왔다. 아침저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해댔는데 삼십여 년을 전~~ 혀 모르고 살았던 알레르기형 비염 증세였다. 생리일이 한참 남고 남았는데 허리의 통증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더부룩한 속과 복부 팽창감.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번 달은 뭔가 다르다. 일단 약은 생략 한다.(후후)

피로감, 오한, 달라진 몸, 허리 통증, 복부 팽창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임신이 아니면 이상한 증상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테기의 노예(임신 테스터에 음성 반응을 확인한 뒤에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시간차를 두고 계속 테스터를 사용하는 것, 양성 반응을 확인할 경우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받기 전까지 테스터를 계속 사용하는 것 등)가 되고 싶지 않았고, 테스터기 생산 제약사를 더 이상 배불릴만큼의 돈이 없었다.(임테기 마이 썼다아이가~~) 그래도 이건... 너무 빼박 임신 증상이야. 증상 놀이가 아니야. 내일이야 내일.


고마웠다. 임테기 구입비용을 절약시켜준 내 몸이. 귀신처럼 낙방 소식을 들었던 그날 낙첨 소식을 들었다. 배란일에 맞춰 부부관계를 하면 임신될 확률이 30%. 로또보다 높아도 너~~ 무 높은 확률인데 - 그렇다고 로또 당첨이 되는 것도 아닌데 - 참... 그 30% 안에 들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낙첨 소식이 처음도 아닌데... 그날은 눈물이 뚝뚝뚝 떨어질 정도로 속상하고 서운했다. 


기대해서 실망했던 것 같다. 아침에 테스터기를 한 뒤 일단 출근은 해야 하니 출근을 하자. 퇴근길에 예쁜 상자를 사서 그 안에 테스터기를 담아서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줘야지. 유산하고 몇 달 만이지? 남편의 표정은 어떨까. 이번엔 양가에 바로 전화해서 알려드려야지. 회사에는 단축근무를 신청해야지. 이제 맘 카페 중고거래 게시판 열심히 들어가 봐야겠다. 아파트 카페에도... 테스터기를 손에 들기도 전에 가도 너무, 심하게 많이 가 있었다. 


나... 너무 속상해

드라마 여주인공처럼(얼굴이 여주인공이란 건 절대 아니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아니 후드득, 샤워를 마치고 난 뒤 샤워기에서 물방울이 뚝뚝뚝 떨어지듯 눈물을 쏟아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티슈 한 통을 탈탈 털 어쓰고, 인중이 빨갛게 헐고, 빨간 코가 터지기 직전가지 땡땡 붓고, 눈알이 시큰거린 만큼 눈물을 쏟아낸 뒤에야 눈물이 멎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내려놓자고 매일 다짐한다. 인간관계에서 업무에서, 한계를 인정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유독, 이상하게 임신에 대해서는 나의 한계, 아니 '인간의 한계'가 왜 인정되지 않는지. 머리로는 인정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이쯤에서 떠오르는 자아성찰? 자아비판? 맘도 내 맘(이성? 의지?)대로 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맘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좀 우습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한바탕 울고 나니... 결국 감사함이다. 임테기를 쓰지 않게 귀신같은 시점에 생리를 해 준 내 몸이 고맙다. 더 늦어졌다면 임신 테스터기에는 음성인데 생리는 계속 늦어져서 테스터기 소비꾼으로 거듭나거나(지금은 음성 반응이지만 언젠가 양성 반응이 나오겠지!), 임신도 아닌 주제에(?) 생리도 제때 하지 않은 내 몸을 정신적으로  학대했을 것이 뻔할 뻔. 


그래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다. 기력 보충을 위해 (또) 소고기를 먹었고, 우리 가족 누구도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하루를 보내게 보살펴주신 신께 기도했고, 내 몸을 사랑하기로 했다. 한날 함께 온 낙방과 낙첨에도 쉬이 낙담하지 않겠다. 낙담해봐야 남는 건 끝 모를 지하방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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