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 Lee Sep 20. 2020

2. 바꿀 수 있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타고난 성격을 절대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던 시절이 있었다. 살아온 세월을 기준으로 돌아보면 3분의 2 이상쯤 되는 듯하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졌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당당히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노력해도 안 되던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큰 문제없이 잘 살아가려면 아무래도 성격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는 걸. 좀 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좀 더 스몰토크를 잘 하고, 좀 더 내 주장을 강하게 피력해야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별 수 없이 스스로를 바꿔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어떤 이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그 노력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히 한동안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여전히 처음 보는 동갑내기에게 인사 한 번 건네는 게 어려웠고, 여전히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으며, 여전히 혼자 있는 게 가장 좋았다. 그러니 타고난 성격을 절대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던 시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번 바꿔보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배반당하는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노력과 불신의 악순환, 동시에 끝없이 떨어지던 자존감. 이 모든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아깝기 짝이 없는 에너지 소모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영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어서, 10여 년간의 시행착오와 나름의 연구(?)를 통해 나의 내향적인 성격 중 결국 바꿀 수 있었던 것과 끝내 바꿀 수 없는 것을 나눠서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과도하게 자신을 바꾸려고도, 그렇다고 내향성을 과하게 고집하지도 않는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적절한 타협점을 겨우 찾은 셈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추려본 바로는 이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것들이다.


 우선 바꿀 수 있는 것. 타인을 대하는 방법, 대화하는 법은 노력한 만큼의 효과가 있었다. 내향인의 경우 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바빠 타인에 대한 관찰이 좀 소홀할 때가 있다. 외적으로 드러난 사건보다도 자아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격동에 관심을 빼앗기기 때문인데, 나의 경우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관심사와 말투, 습관을 알게 되니 할 수 있는 말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대단히 말을 잘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일관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갑자기 기적처럼 말문이 터지는 그런 그림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말 한 마디 뱉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내향인이기에, 화술에 앞서 뻔뻔함과 용기를 수없이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시간과 시도의 문제인 듯하다.


 시간과 시도로 모든 일이 해결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선천적인 요인의 차이는 엄존하고, 성격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학자는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의 뇌 속 호르몬 반응이 아예 다르다는 주장도 했다. 읽은 지 오래 된 책이어서 이후 그의 주장이 인정받았는지, 혹은 폐기되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향인이 아무리 외향인인 척 하고 살아도 타고난 신체의 반응마저 바꿀 수는 없다는 거다. 이젠 많은 청중 앞에서 능란하게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처음 보는 상대와 필요한 대화도 잘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면 아직도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지나치게 긴장한 경우 끝나면 어깨나 목, 머리의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가방에는 진통제가 상시 대기 중이다. 약 꿀꺽 삼키고 푹 쉬는 수밖에 없다. 내향인에게 하루 중 혼자 있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향인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심신의 방전이 너무 빠르다.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기술과는 달리 도무지 바꿀 수가 없었다.


 한때는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게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 힘들어질 뿐이니, 지금은 이 두 가지 깨달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마저도 노력을 하고 있네. 역시 삶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이전 01화 1. 내향인은 오늘도 고민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