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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Sep 27. 2020

3. 면접과 청심환



  몇 해 전 ‘다큐 프라임’에서 내향성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제목은 ‘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3부작이었던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 남자의 면접 장면이었다. 실제로 무척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민하던 한 20대 남성이 주요 출연자로 등장했는데, 그 분이 실제로 구직활동을 하다 면접을 보러 갔던 것이다. 남성은 한 기업의 다대다 면접, 즉 그룹면접에 임하고 있었다. 면접 전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얼마나 큰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총 세 시간 가량 되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 지금까지도 그 장면이 가장 생생한 건 아마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늘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순탄치 못한 진로 탐색 과정을 거쳤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유학이 좌절되고 뒤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탓인데, 대학생 때부터 스펙 쌓기 등 취업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온 이들에 비해 나의 취준 능력치는 낮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건 역시 면접이다. 나에게 이런 저런 능력이 있음을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어필해야 하는데, 그거야말로 이전까지는 거의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학부나 대학원의 발표는 학문에 관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철저히 준비하면 그런대로 잘 대처할 수 있었는데, 면접은 그런 발표와는 전혀 달랐다. 일단 어떤 질문이 나에게 던져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큰 두려움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기업의 예상 질문과 면접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겠으나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다. 안에서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이후 타인에게 발화하는 대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내향인의 취업 준비 과정이란 그러니까, 그같은 ‘인출 과정’을 보다 빠르게 해내도록 연습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그건 ‘없던 나’를 만들어내는 정도의 변화 아닌가. 긴장은 이미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면접장에서는 너무 완벽한 말을 하려고 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편안하게 내가 가진 것을 다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면접관들은 그런 태도를 보고 사람을 뽑는 거라는 말도.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부터 팽팽해진 긴장감이 당일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나 있었다. 한 기업의 최종 면접에 들어갔을 땐 실제로 다리가 덜덜 떨려 애를 먹기도 했다. 이러면 이미 알고 있는 것들까지도 제대로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나는 그 기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속 남성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머리속은 하얘지고, 말은 엉키고, 목소리는 작아진다. 그리고 면접장을 나서면 스스로가 미치도록 미워진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면접 때마다 청심환을 사 먹어 볼까. 하지만 복용 후 긴장을 너무 안(못)하게 되어 오히려 시험을 망친 적이 있다는 한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그마저도 깨끗이 포기했다.


 내가 그 지난한 고통에서 가까스로 놓여날 수 있었던 데에는 약보단 한 문장의 힘이 컸다. “떨어져도 괜찮아.”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 기업에 꼭 내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면접을 앞둔 나에게는 어쨌든 괜찮다고 말해 주기로 했다. 그래도 다른 일자리는 있고, 어딘가에서 채용을 담당하는 누군가는 긴장 너머의 내 능력을 알아봐주기도 할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과긴장 상태에서 풀려난 뇌가 최대한의 표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면접 잔혹사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하지만 요즘도 가끔 그 다큐멘터리 속 남성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디 그도 그만의 방법으로 이미 면접이라는 큰 산을 통과해 멋진 내향인 비즈니스맨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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