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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Oct 05. 2020

4. 충전이 필요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손을 씻는다. 옷을 갈아입는다. 저녁을 먹는다. 가족과 약간의 대화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낮은 채도의 조명을 켜고 얼마 전 큰맘 먹고 구매한 안락의자에 앉는다. 밖이 조금 시끄럽다면 역시 얼마 전 큰맘 먹고 구매한 에어팟 프로로 귀를 잘 막아 준다. 그렇게, 눈을 감고 한동안 멈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몸의 힘을 빼고 오롯이 혼자가 되는 순간, 집 밖에서 소진된 내면의 에너지가 재충전되기 시작한다. 한 시간 가량만 확보되어도 충분하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잠들기 전까지 다른 일, 이를테면 집안일이나 글쓰기 따위를 할 수 있다.


 외향인과 내향인은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역시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는가?’라는 질문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에너지’라는 단어가 조금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기력’이나 ‘동력’으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사실 모호함으로 치면 거기서 거기 같기는 하다). 외향인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좋아하는 이들과의 왁자지껄한 수다와 웃음, 그 떠들썩한 분위기로 삶의 부정적인 면을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내향인은 그런 순간은 꼭 없어도 되지만, 하루 중 혼자 있는 시간은 꼭 일정량 확보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있다. 즉, 외향인들이 힘을 얻는 교제의 시간에 내향인들은 혼자 있으면서 충전한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친교의 시간을 통해 얻게 되는 다른 이점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향인들은 그 시간 이후의 소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손 하나 까딱 하기 힘든 피로가 찾아오니까. 해결책은, 최대한 잘 쉬는 것뿐이다. 업무전화도, 회의도, 대화도 없는 고농축의 충전 시간을 가지는 것. 그럴 때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편한 사람과도 잠깐 거리를 둔다. 그러면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힘이 회복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듯 간단한 과정으로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 빠질 때도 있다.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다. 학부, 석사, 직장생활을 한 번의 쉼도 없이 달리다 지쳤는지 짧은 쉼으로는 도무지 힘도 의욕도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고, 퇴사를 하자마자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대개 혼자 떠나는 사람들은 여행 커뮤니티에서 동반자를 찾지만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건네지 않고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시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해보니까 외롭지 않았어?”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너무 길어지면 힘들었겠지만, 일주일 정도의 고립은 내게 자유시간과도 같았다. 치안에 대한 염려만 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모국어가 들리지도, 쓰이지도 않으니 에너지를 사용할 일은 없고 충전만 지속되는 ‘완충 모드’가 유지되었다. 그간의 마음 배터리 고장이 그렇게 수리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 내향인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이유도 결국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간에 에너지를 잘 쓰기 위함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아마 스스로를 내향인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건 결코 사회성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걸, 내향인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해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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