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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Oct 12. 2020

6. 게으르게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정말 매일같이 약속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약속 하나 없이 집에서 게으르게 있어 보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집에만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러면서 게으른 생활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한 단어에 멈칫했다. ‘게으르게’. 약속 없이 집에 있는 건 곧 게으름이다. 아마도 그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문득 가수 홍갑의 노래 ‘11시에 봅시다’가 떠오른다. 화자는 오전 11시에 약속이 있다. 그런데 이불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해 나가기가 싫다. 그래서 ‘밤 11시에 보자’고 노래한다. 그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도 한 통 받는데, 알고 보니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온 고향 친구다. 이번 달에 한 번 만나자는 친구의 말에 화자는 거절한다. ‘다음 달에 만나자’고. 어쩌면 약속 없이 집에 있는 삶을 게으르다고 판단한 이의 상상 속 내향인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 


 때는 바야흐로 네트워킹의 시대.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돈까지도 부를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다. 하긴, 언제는 그렇지 않았을까마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개인이 구축한 네트워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게으른’ 내향인은 어떡하지? 아무리 노력해도 외향인보다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흔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내향인을 낯을 가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낯가림과 내향/외향은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에 유독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하고 사람들 속을 파고드는 이가 있다면 그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단지 그런 차이일 뿐이다. 내향적인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어렵지 않을 수 있고, 외향적인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 수 있다. 성격에 대한 여러 서적들을 탐독할수록 이 두 개념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향인이라고 해서 꼭 관계망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닐 수 있다. 활달하게, 싹싹하게 다가가지는 못하더라도 묵묵하고 편안한 내향인만의 강점으로 천천히 벽을 허물면 되는 게 아닐까. 


 내게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이 많다. ‘의외로’ 친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꽤 듣는데, 그건 시간을 견디는 우정을 쌓을 이들을 운 좋게 많이 만난 덕분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욕심을 내지 않는 대신, 한 명 한 명과 깊고 오래 가는 관계를 만들고자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내 사람들’과는 어지간해선 멀어지지 않기 위해 또한 신경을 쓴다. 새로운 사람과 원점에서부터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스트레스이다 보니 보다 잘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또한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더 자신 있고 마음이 편안한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굳이 억지로 무리를 해 에너지를 소진하는 건 나에게 알맞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깨달아가고 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매일같이 약속을 잡아 나가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많은 일을 한다. 시간의 밀도를 놓고 본다면 오히려 다른 이들과 수다를 떠는 것보다 더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만나지 않는 대신 톡이나 전화로 자신의 네트워킹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쉼을 누리기도 할 것이다. 역시 꼭 필요한 시간이다. 참고로 홍갑의 곡 ‘11시에 봅시다’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야 다음 달에 만나자/야 요즘 내가 좀 그래” 정말로 집에서 어떠한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오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라 인생의 낮고 낮은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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