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 Lee Oct 18. 2020

7. 각자의 방식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깊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 그걸 어렴풋이나마 처음 깨닫는 건 나의 경우 대학을 다니면서였던 것 같고, 직장생활을 하며 비로소 엄연한 현실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는 잘 몰랐고, 타인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었던 시기였다. 또한 서로 비슷한 지역적 배경과 통제된 환경 속에 성장하기에 조금 다른 점이 있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공유되는 다른 지점들이 분명 존재했고, 그 덕분에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무 살 이후의 삶은, 내 시각과 기준에서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타인을 보며 놀라워하는 일의 연속이기도 했던 것 같다.


 대학과 비교하면 직장은, 훨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협력과 충돌을 반복하는 곳이다. 이는 (물론 지옥의 팀플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개인 성적만 책임지면 되는 시기를 벗어나 나 자신과 조직의 성과, 타사와의 연결 등 총체적인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시기로 이행했음을 뜻한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라면 아마 더할 것이고, 직장인의 경우도 자신이 속한 조직 외에 많은 사람들을 업무상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별의 별 사람 다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운이 좋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아주 가까운 동료, 후배, 상사로 만날 수도 있고, 심각한 경우 퇴사로도 이어진다. 


 그렇다. 학교를 다닐 땐 도덕 교과서에서나 접했을 법한 문장, “사람은 다 다르다.”는 명제는 직장인이 되면 엄연한 현실이 되어 우리 일상의 난이도를 높인다. 나 역시 따지고 보면 ‘나의 다름’을 글로 풀어 쓴 것일 뿐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더라도 내향성이라는 단어 아래에 다들 조금씩 다른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뭐? 인간이 다 다른데 뭘 어쩌라는 것인가? 모두 다른 삶의 결을 일일이 알고자 애쓰며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얼핏 적절한 반문처럼 보인다. 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노력은 생각보다 무용하지 않다. 


 나에겐 죽을 만큼 힘들도록 느껴지는 일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내 생각엔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은 심각한 일일 수 있다. 이러한 개인차를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고, 그 덕분에 나에 대한 타인들의 태도도 연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내향인과 외향인 역시 마찬가지다. 내향인인 나는 외향인을 아마 끝내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외향인인 타인 역시 나에 대해 마찬가지 생각을 가질 것이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이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얽혀서 일을 해야 하는 사이라면 그걸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름을 숙고하며 발을 맞춰 나가는 작업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쉽지 않다. 내향인에게 특히 그렇다, 고 감히 생각한다. 기업은 여전히 외향적인 인재를 선호하며, 내향적인 면을 얼마나 잘 감출 수 있는가가 내향인의 취업 및 직업전선 성패를 좌우하곤 한다. 하지만 모두에겐 각자의 방식이 있다. 내향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외향인이 가지고 있듯, 외향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내향인은 가지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일을 하며 마치 톱니바퀴가 정확하게 딱 맞아떨어지듯 굴러가기 시작하는 순간엔 모두가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6화 6. 게으르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