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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09. 2019

잔칫날이 아니어도 / 제곱

계란을 풀어서 지단을 만든다.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하는 것이 맞지만 같이 해도 상관없다. 다진 소고기와 애호박, 당근도 볶아 준다. 잘 익은 김치도 잘게 썰어서 준비해 놓는다. 말린 멸치와 말린 밴댕이를 물에 넣고 30분간 육수를 끓인다. 그 동안 소면도 삶아 준다. 뚜껑을 열고 삶다가 거품이 올라오고 넘치려고 하면 차가운 물은 한 컵 넣어 준다. 금세 거품이 잡히다가도 다시 올라온다. 다시 한 번 거품이 올라오면 한 번 더 물을 붓는다. 마지막으로 거품이 올라오려고 하면 불을 끄고 찬 물에 소면을 씻어 준다. 손빨래를 하듯 박박 헹궈 준다. 육수가 다 준비 됐으면 멸치와 밴댕이를 꺼낸다. 큰 면기에 소면을 돌돌 말아 올리고 육수를 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준비해둔 고명들과 손으로 찢은 김을 차례대로 올린다. 마지막으로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볶은 깨로 만든 양념장을 기호에 맞게 넣어 주면 된다. 


젓가락을 국수 깊숙이 꽂아 놓고 좌우로 살살살 풀어 준다. 소면 위에 올려진 고명들이 면기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이제 가능한 크게 국수를 집고, 한국인의 밥상 출연자에 빙의한다. 


'나는 지금 새벽출항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온 뱃사람이다. 옆에는 드럼통을 개조해서 만든 난로가 피워져 있고, 평상에 앉아 잔치국수를 먹고 있는 중이다. 얼른 몸을 녹이고 배를 추스린 뒤 다시 출항해야 한다.' 


그리고 있는 힘껏 국수를 입에 쑤셔 넣는다. 고상하게 먹으면 맛이 없다. '잔치국수, 넌 이제 다 죽었다.' 라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먹어야 한다. 후루룩. 이 후루룩이라는 의성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잔치국수를 먹을 때일 것이다. 꼭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한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보통은 세 젓가락 안에 승부가 난다. 부족하다 싶으면 소면을 더 추가한다. 간장과 김치도 더 넣어 준다. 처음에 먹은 잔치국수는 뜨거웠다면 두 번째 먹는 잔치국수는 차가운 소면이 더해지면서 국물이 식는다. 이 때는 국물과 국수를 같이 마신다는 느낌으로 먹어야 한다. 면기를 양손으로 잡고 국물을 마시다가 딸려 들어오는 소면을 놓치지 않는다.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던 고명들도 이번에는 잘 챙겨 준다. 깨끗이 비워진 면기를 내려놓으면서 목 긁는 소리를 내준다. 이렇게 두 그릇이나 먹었어도 항상 육수나 소면이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찬밥이나 양념장을 준비한다. 국물이 남았다면 찬밥을 말아서 먹는다. 소면이 남았다면 손가락에 돌돌돌 말아 양념장에 콕 찍어서 먹는다. 하~잘 먹었다. 뱃속에서 국수가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배가 부르면 그대로 쇼파에 기대어 쉰다. 머릿속에서도 도파민이 흘러 넘쳐 인생의 풍만함을 느낀다. 잔치국수는 잔칫날 먹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먹으면 잔칫날이 아니어도 잔칫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잔치국수 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르르 잠에 든다.


by. 제곱 / 4월 2주차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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