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를 먹지 못한 지도 40여 일이 지났다. 영화 '김씨표류기'에선 주인공이 짜장면이 그리워 짜장라면 봉지로 인공호흡을 한다. 그 장소가 무려 서울 한복판인데, 나도 그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햄버거를 먹지 못한다.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롯데리아가 있고, 회사를 빙 둘러서 버거킹, 맥도날드, 맘스터치, 바스버거 등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햄버거가 그리워 햄버거 봉지를 코에 박고 인공호흡을 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종종 햄버거가 먹고 싶은 충동엔 휩싸인다. 바로 옆에 두고도 햄버거에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방식으로 체중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햄버거는 그리 건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한 음식으로 분류된다. 패스트푸드이며 정크푸드.
하지만 때로는 햄버거가 굉장히 건강하고, 영양적으로도 훌륭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버거 패티는 탄수화물 덩어리이긴 하지만 고기는 훌륭한 단백질원이요, 괜찮은 고기를 사용했다면 지방 충전용으로도 손색없다. 양상추와 양파, 토마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샐러드이며 본디 야채류의 탄수화물이란 그 존재가 식이섬유가 가득하기 때문에 얼마만큼이나 많이 먹어도 괜찮은 정도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몇 가지 소스는 맛을 위해서 곁들여지는 정도다. 이런 조합이라면 충분히 탄수화물, 단백지, 지방의 3가지 필수 영양소의 필요량을 채우고도 남는다. 허니 굉장히 건강하고, 영양적으로도 훌륭한 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하필 이렇게 필수 영양소의 필요량을 채우고도 남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남아버린 영양소는 몸 어딘가에 쌓이게 되고, 쌓인 영양소는 몸에서 지방이 된다. 그렇담 적절한 양의 햄버거를 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싶지만 그런 햄버거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이 가득한 소스는 빼야 할 것이고, 고기는 좋은 고기여야 한다. 야채는 듬뿍이고, 빵은 이왕이면 피해야 한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거나 정말 양심적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수제버거집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 햄버거는 아니지만 햄버거 속에 들어가는 고기 패티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다진 소고기와 다진 두부를 잘 섞어서 계란과 함께 버무린다. 소위 ‘떡이 될 정도’로 고기를 치대서 프라이팬에 굽는데 이 모양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억지로 모양을 잡고 이것을 양상추며 각종 채소와 함께 층을 쌓아 올리면 꽤 버거의 모양새가 나온다. 하지만 빵은 곁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입에 앙, 베어 물면 이건..... 햄버거라기보다는 고기쌈의 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빵도 없고, 소스도 없다. 고기와 야채. 오직 두 가지 재료로만 만들었다. 햄버거의 대체재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일까.
요즘은 이런 식으로 표류 중이다. 기존에 먹던 음식에서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생겼고, 그 때문에 다른 음식들로 그것들은 대신하고 있다. 주로 탄수화물을 먹지 못하고 그 때문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아졌다. 고기와 야채 위주의 식사는 얼핏 좋아 보이지만, 맛은 거기서 거기(고기쌈)의 맛이다. 이 표류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겠는데 결코 쉽지만은 않다. 뭐 어떤 순간에는 햄버거 포장지를 코에 박고 인공호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둥둥둥. 서울 한복판에서 표류 중이다.
by. 에라이 / 10월 4주차에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