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Nov 09. 2019

사라진 빵 / 제곱

나른한 일요일 아침, 전날 과음한 탓인지 일어나기가 귀찮다. 아침은 안 챙겨 먹은 지 오래고, 점심도 대충 요기만 하고 싶다. 냉장고를 뒤져본다. 계란 3알, 3일 전에 산 식빵, 제주도에서 선물 받은 귤잼, 그리고 3달 전에 뭔가를 만든다고 사놓고 한 번도 안 쓴 버터. 이거면 충분하다. 오늘의 점심은 '프렌치토스트'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간혹 아침을 챙겨 먹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붙잡을 수 없는 파랑새 같은 그 꿈은 언제나 3일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두 주먹에 남은 것은 감성 가득한 오븐 토스트기와 플레인 요거트, 그리고 3일 전에 산 식빵이다. 


솔직히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 식빵에 잼을 발라서 먹을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때문에 하루, 이틀 식빵은 냉장고 구석에서 식용 냉장고 탈취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주말이 돼서야 냉장고를 열어 푸석푸석하고 차갑게 식은 주검을 꺼내어 놓는다.


"김 간호사, 빨리 차지 준비해!" 계란 2개를 풀고 물 또는 우유 반컵과 설탕 두 큰 술을 넣는다. 시나몬 가루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에겐 설!탕!이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현대에는 '빛과 소금'이라는 단어보다는 '빛과 설탕'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음. 전날 먹은 술이 아직 덜 깼나보다. 


이제 후라이팬을 꺼내 중간 불에서 버터 한 큰 술을 녹인다. 식빵이 어느정도 덜 차가워 졌으면 계란물에 푹 담그고 후라이팬에 올린다. 이 때 계란물을 너무 많이 머금게 하면 프렌치토스트가 아니라 식빵계란전 처럼 되니 조절을 해줘야 한다. 버터를 골고루 묻히고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뒤집는다. 설탕이 녹아 식빵이 옅은 갈색을 띄는 황금처럼 된다면 성공! 식빵 소생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접시에 담고 한 개에는 설탕을 뿌리고, 한 개에는 선물 받은 귤잼을 바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유. 커피나 밀크티와도 잘 어울리지만 프렌치토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우유랑 먹는 것이 최고다. 프렌치토스트를 한 입 가득 입에 우겨 넣고, 바로 우유를 마시면 빵 사이사이 마다 우유가 스며들며 환상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오늘도 이 아무개는 무사히 냉장고를 비워냈습니다. 


사실 프렌치토스트는 지금의 인식과 같이 고급 레스토랑이나 브런치 가게에서 파는 고급 음식이 아니었다. 과거 프랑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오래돼서 눅눅해진 빵을 그래도 맛있게 먹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안해낸 음식이 바로 프렌치토스트의 기원이다. 프랑스 어원도 'le pain perdu'로 '사라진 빵', 즉 '망가진 빵', '상한 빵' 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가장 값이 싼 바게트를 우유를 부은 계란물에 살짝 적셔 굽는 방식이었다. 버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빵이 지금에 와서 한 접시에 15,000원 정도 하는 고급 음식이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정말 '사라진 빵'이 된 것이다. 


by. 제곱 / 3월 1주차에 작성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