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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09. 2019

빼기 빼기 곱빼기 / 에라이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 남은 삶에서 가장 젊을 때다.'라는 말처럼 어느 지점에 사람은 본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몸무게를 가지게 된다(비유가 억지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나온 삶 중에서 지금이 가장 무거운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높은 몸무게. 전까지는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이 가장 무거운 때였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3kg이나 무거워졌다. 5년 전이던 입대 시점부터 전역할 때까지는 꾸준히 운동을 해서 15kg를 빼고 나왔는데, 전역하곤 지금까지 다시 18kg을 찌웠다. 원상복귀에 3kg을 얹어서 딜. 하여 지금이 역대급이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목표는 지금보다 6kg을 빼는 것. 6kg은 어디서 나온 수치냐고? 그건 다름이 아니라 6월에 살을 빼겠다 마음을 먹은 탓이다. 그렇게 6월을 보냈다. 드문드문이지만 운동을 하러 헬스장으로 나섰고, 으레 살을 빼려면 하는 것처럼 먹는 것도 조절하려 했다. 그렇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이 있기에 간헐적 단식으로 저녁을 안 먹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그 순간만 잘 넘어가면 되는데 그 순간이 어려웠다. 그래, 그냥 조금만 먹자. 정량에서 내용물을 조금 덜어서 먹으면 괜찮겠지, 하며 1인분보다 적은 양을 먹었다. 그랬던니 오히려 양이 애매해졌다. 이윽고 하나를 더 가져와서 먹기 시작했다. 먹는 양을 빼려다, 빼려다 곱빼기가 되었다. 빼기빼기 곱빼기.


15kg을 뺐던 군인 시절에는 하루에 10km씩을 달렸다. 1시간이면 10km를 달릴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지켰던 규칙이었다. 먹는 일이란 군대에서 배식해주는 아침, 점심, 저녁이 끝이었다. 정량을 먹고, 정해진대로 운동을 했다. 그게 다였다. 무언가 덜어내려 하지도, 억지로 더하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덜어내려다 곱빼기로 먹기 바쁘고, 그렇다고 매일 운동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 '내 지나온 삶 중에서 지금이 가장 무거운 순간이다.'라는 문장을 쓰게 되었다.


**빼기빼기, 곱빼기**의 순간은 그뿐만이 아니다. 정해진 양보다 조금 덜하려, 더 싸게 하려고 마음먹으면 어느 순간에 그것보다 2배를 해치워야 했다. 쇼핑을 할 때도 무조건 싼 가격을 찾아서 주문을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물건이 말썽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취방의 공간에 의자를 하나 두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이마트에서 저렴한 캠핑의자를 하나 샀다. **빼기, 빼기.** 캠핑용 의자는 캠핑을 할 때 잠시 동안 앉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캠핑 의자에 털썩털썩 앉다 보니 푹- 주저앉았다. 연결부의 나사가 끊어져 버린 것. 방 안 의자는 방 안 의자다운 것으로 샀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의자를 하나 더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곱빼기.** 노트북도 저렴한 노트북을 샀다. 일반적인 노트북은 아니었다. 자판이 터치 스크린이고 태블릿과 노트북의 중간 지점에 있는 모델이었다.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무게도 가볍기에 사기로 결심한 노트북이었다. **빼기, 빼기.** 그런데 터치 스크린은 노트북 타이핑을 하기에 적절한 방식이 아니었다. 타이핑을 위해 키보드를 따로 사야 했다. 가벼웠던 노트북에 키보드를 더해야 했다. 더 이상 노트북은 가볍지 않았다. 노트북 가격에 키보드 가격까지 더해졌다. **곱빼기.** 얼마 전에는 빔 프로젝터를 주문했다. 역시나 저렴한 빔 프로젝터. 선은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빼기, 빼기.** 그 대신에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받아준다는 장치를 구매했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주렁주렁 **곱빼기.** '싼 게 비지떡'을 바꿔 말하면 아마도 **빼기빼기 곱빼기.**


빼려면 제대로 빼야 한다. 어중간하게 빼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그 배로 얹어서 일을 한다거나, 다시 물건을 사야 한다거나, 몸무게를 더 얻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역대급 몸무게인 지금, 이 무게를 빼려거든 괜히 억지로 무언가를 덜어내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제대로 된 방식으로 정식으로 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내가 했던 것처럼. 지금은 몸무게를 빼려고 덜 먹지는 않는다. 그 덕에 곱빼기로 먹진 않아 최대치의 몸무게의 마지노선을 유지 중이다. 빼기빼기 곱빼기. 이번 목표 조금 천천히 해나가야겠다. 지금은 아직 내 남은 삶 중에서 나는 가장 젊을 때니까. 비록 지금 이 순간이 내 지나온 삶 중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이기는 하지만.


by. 에라이 / 8월 2주차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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