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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16. 2020

튜베로즈(위험한 쾌락) - 저의 요일을 팝니다.

여름_6월 16일의 탄생화


  

 '일주일 중 한 요일을 팝니다.'

홍대 뒷거리 그늘진 구석퉁이. 한 노인이 바닥에 꽃 7송이를 팔고 있었다. 월요일 저녁, 미술 학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나는 매일 걷던 길에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던 중에 꽃을 파는 노인과 이상한 문구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꽃인데 무슨 요일을 판다는 거야. 요새 이상한 컨셉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니까.'


나는 지친 발걸음으로 노인을 무시한 채 계속 길을 걸어 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이상한 문구가 나를 붙잡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는 한 번은 새로운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노인 앞에 섰다. 노인은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뚫어지게 바닥만 보고 있었다. 노인 앞에 있는 7송이의 꽃은 모두 같은 꽃들이었다. 굵은 줄기에 달려 있는 하얀 꽃들은 모두 피지 않은 채 무리 지어 맺혀있었다. 아직 피지도 않았지만 향기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저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노인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튜베로즈..."


노인은 말할 힘도 없다는 듯이 꽃의 이름을 말하고는 계속 깊은 기침을 했다. 나는 어쩐지 그런 노인이 안쓰러워 보였다. 신발도 신고 있지 않고, 몸에는 맘에 맞지도 않은 가벼운 셔츠만 겨우 걸치고 계속 기침만 하고 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지갑을 꺼내면서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이 꽃 다 살게요. 얼마예요?"


노인은 그제야 힘들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침을 하며 말했다.


    "다 살 수는 없어요. 한 송이만 사야 해요. 아니, 한 요일만."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기도 꽃이라고 말하다가 요일이라고 말하는 걸로 보아 아직 이런 컨셉으로 꽃을 판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송이만 판다니. 나는 의아해했지만 그래도 계속 노인에게 말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음... 토요일 한 송이만 주세요. 토요일이 제일 좋거든요. 일하지도 않고 그리고 다음날도 쉴 수 있고."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여섯 번째 꽃을 들어 내게 건넸다. 

   

    "물을 담은 병에 꽂아 두세요. 저녁이면 꽃을 피울 텐데, 그 향기를 깊게 마시면서 주무세요. 그럼 매일이 토요일일 거예요. 그리고 미안해요."

노인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꽃을 받아 들고서는 집으로 향했다. 노인이 말한 대로 빈 병에 물을 받고 꽃을 꽂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움츠려있던 꽃들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통통한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었다. 향기는 전보다 훨씬 진해졌으며 온 방안을 휘감는 듯했다. 그러고는 나는 꽃향기에 취해 몽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겨우겨우 휴대폰을 충전해놓고 씻지도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4시였고 해가 잘 들어오지도 않는 내 방에도 햇살이 들어올 만큼 해가 중천이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학원 수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모자를 눌러쓴 뒤 곧장 미술학원으로 달려갔다. 가쁜 숨을 가다듬고 강의실 문을 슬며시 열었다. 하지만 그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에 있는 시계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틀림없이 나의 수업시간이 맞았다. 나는 의아해하며 원장 선생님께 전화하려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 순간 나는 휴대폰에 적혀있는 오늘의 요일을 보았다. 토요일. 분명 어제는 월요일이었을 텐데...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휴대폰이 고장 난 것 같았다.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 연결음이 지난 뒤 원장 선생님이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이 선생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일주일 동안 연락도 안 받고 수업도 안 하고 갑자기 잠수를 타더니, 이제 와 전화해요? 그것도 학원도 안 여는 토요일에?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까지 학원에서 수업했는데, 어제 퇴근하면서 저 보셨잖아요, 원장 샘. 그리고 토요일이라뇨. 오늘 화요일이에요."


전화기 너머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 선생님. 저랑 지금 장난해요? 마지막으로 이 선생님 본 게 월요일이에요. 그리고 오늘은 화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고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계속 이럴 거예요?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왜 잠적했는지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아니요, 원장 샘. 제가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러는데, 진짜 어제 출근했었다니까요? 애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원장 샘이야말로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엄마, 나 진짜 괜찮아. 근데 잠깐만 나 이따가 연락 다시 할게 알았지? 나 지금 학원이야. 집 가서 바로 연락할게."


나는 엄마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학생들에게 연이어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소리만 할 뿐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정리해보면 오늘은 토요일이 맞고, 모두들 내가 정말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라졌었다고 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봐도, 티비를 봐도. 오늘은 토요일이 맞았다. 나는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도 않은 채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멍하니 어제, 아니 월요일에 산 꽃을 바라보았다. 꽃은 전보다 훨씬 더 생기 넘쳐 보였다. 반대로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셀카를 찍고 부모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무사히 집에 잘 돌아왔고 피곤해서 자겠다고 보내자마자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날,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방전된 휴대폰은 켜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노트북을 켜고 오늘의 시간을 확인했다. 잠든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토요일만 살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인지한 뒤로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다시 한번 역정을 내는 부모님과 통화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모님의 반응은 전에 통화했을 때와 같았다. 토요일만 살고 있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무 일 없이 집에 잘 있다는 말은 믿어주셨다. 집으로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말리고는 일주일 동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매일 12시 자정을 지나면 다음 주 토요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요일부터 금요일 동안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증발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일주일이 나에게는 모두 토요일일 뿐이었다. 


나는 자정이 되기 직전 가게에서 물건을 집어 들고, 자정이 지나 자동으로 다음 주 토요일, 튜베로즈 앞에 그 물건을 들고 서있으면 그 물건을 되파는 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절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내 너무나도 손쉽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죄책감도 줄어들었고 점점 더 대범해져 갔다. 훔치는 물건의 액수는 점점 커져갔고, 기술은 늘어갔으며, 붙잡히지 않게 머리도 쓰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크게 몇 번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절도품은 예술품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자들의 예술품이었다. 부자들이 비자금을 세탁할 생각으로 예술작품을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 예술품은 절도를 당해도 신고를 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신고를 하는 순간 자신의 비자금 내역이 들키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예술품들은 정상적인 루트로 구입하고, 판매하지도 않는다. 나는 몇 번의 연습을 마치고, 부자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작품 몇 점을 들고 자정이 지나길 기다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튜베로즈 앞으로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나타날 수 있었다. 


부자들이 신고를 머뭇거리는 사이 그 예술품을 암시장에 팔아치웠다. 미술 공부를 한 덕분에 어떤 게 값어치 있는 작품인지 금방 알 수 있었고, 암시장에서도 호구당하지 않고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부자들 사이에서 예술작품 대도가 생겼다는 소문이 금방 퍼지고 집의 경계가 삼엄해지기 시작했지만 상관없었다. 두세 번의 도둑질만으로 나는 평생 놀고먹어도 되는 돈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 뒤로는 정말 말 그대로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나는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토요일들을 쉬지 않고 보냈다. 


매일 클럽에서 물 쓰듯 돈을 쓰는 덕분에 나는 VIP 행세를 할 수 있었고, 멋진 차, 멋진 옷, 심지어는 내가 예술품을 훔친 그 부자들 옆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부자들에게 스타트업 대표라고 나를 소개하고 그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친분을 쌓기도 했다. 매일 파티를 열어 많은 셀럽들을 초대하여 즐기기도 했다. 한 번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나의 생활은 걷잡을 수도 없이 방탕해져만 갔다. 시간 감각은 없어졌고, 나와 일반 사람들의 일주일의 시간차는 신경 쓰지도 않는 지경에 빠졌다. 


그렇게 세월을 흘려 보냈다. 매일이 로마시대의 귀족들의 삶 같았다. 화려한 사람들 속에 있다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숙취에 고생하며 하루는 쉬자고 다짐한 어느 날 밤, 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방금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는 전화였다. 위중한 상태라는 의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옷을 챙기고 현관을 나가는 찰나, 자정이 지나고 나는 나의 방에 있던 튜베로즈 앞에 서있었다. 튜베로즈는 처음 홍대에서 노인에게 사고 집에 꽂아두어 만개했을 때 보다 오므라들어 있었다. 꽃이 진 것이 아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듯했다. 나는 꽃을 바라보다가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왜 보호자가 일주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냐며 화를 내었고, 이미 부모님은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현관문을 나가다가 방으로 이동된 그 일주일 사이 부모님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며칠, 아니 몇 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일반 사람들의 시간으로 몇 달이 지난 후였다. 집에 있던 물건들은 사람이 돌보지 않은 탓에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고, 음식들은 모두 상해 있었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가 허기를 채우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꼴도 보기 싫은 튜베로즈 앞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튜베로즈는 아무리 해도 손상시킬 수가 없었고, 강에 던져버려도 자정이 지나면 내가 튜베로즈 앞 강물에 빠져있을 뿐 버려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집은 관리비를 내지 못하여 경매에 부쳐지게 되었고, 통장은 압류를 당한 뒤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노인에게 샀을 때처럼 봉우리가 다 접혀버린 튜베로즈 한 송이뿐이었다. 나는 나에게 꽃을 판 노인이 있던 자리에 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뒤였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박스에 글을 써서 내 앞에 두었다.


   '일주일 중 토요일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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