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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3. 2020

회양목(참고 견뎌냄)

겨울_1월 10일의 탄생화

2019년 말이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게 말이다. 나는 그때 알아챘다. 바이러스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인류는 언젠가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로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코로나 사태가 서서히 잠잠해지고 전 세계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할 때, 나는 그다음 몰려올 '제2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교외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그 밑에 핵폭발에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지하실을 지었다. 매달 내 월급의 50%를 지하실에 넣을 비상식량을 구입하는 데 썼다. 또 30%는 지하실을 쾌적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썼다.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를 대비해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한 뒤 모든 전자 기구를 연결했고, 혼자 지낼 때 심심하지 않게 각종 오락 시설도 구비했다. 꽤 오래 지내야 할지도 모르므로 비싸고 좋은 가구들도 잔뜩 들여놨다. 소파, 식탁, 침대, 의자를 차례로 구입해서 지하실에 배치하니 꽤 살만한 집이 되었다. 우울증을 예방할 목적으로 이쁜 그림들도 벽에 걸어놨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유별나다며 비웃었다. 아무리 전염병이 무서워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돈 지랄을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반대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곧 코로나19를 뛰어넘는 최강의 바이러스가 인류를 강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올해 2037년, 내 예언은 적중했다. 변종 바이러스인 코로나37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했다. 치명률이 70%가 넘는 데다 전염률도 굉장히 높은 괴물 같은 질병이었다.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하실로 대피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미리 지하실에 인터넷 선과 라디오, 유선 망을 설치해놨었기 때문에 안에서도 바깥 소식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지하실 식량창고는 먹을 것들로 넘쳤다. 통조림은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였고 개수는 대충 세어봐도 5년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각종 보드 게임과 닌X도 게임, 만화책과 소설책도 최근까지 계속 구입해서 넣어놔 즐길 거리도 충분했다.


약 한 달 후,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폐쇄되어 유령 도시가 되었다는 뉴스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시민의 80%가 사망했고, 나머지 20%도 전염 상태로 죽기 직전이거나 다른 나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야말로 유령도시였다. 나는 내 자신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곳에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전염병이 도래할 것이라는 통찰과 철저한 준비성 덕택이다. 그때 나를 비웃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 웃음만 나온다. 


 5년 정도만 지하실에서 살다가 밖으로 나가면 된다. 그쯤이면 전염병은 사라져 있고 맑은 세상이 나오겠지. 그때까지 잘 살자.



-띵동-

어라? 누가 지하실 현과 벨을 눌렀다. 
누구지? 이 마을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텐데…?

……


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제작진이 이번에 찾은 분은요, 10년째 차가운 지하실에서 혼자 살고 있는 젊은 남자입니다! 흔히 '프레퍼족'이라고 하죠. 세상을 멸망시킬 재앙이 곧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종말의 날이 왔을 때 살아남기 위한 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바로 오늘 만나볼 분이 이 '프레퍼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이분은 세상이 이미 멸망 단계에 갔다고 생각하신다는 건데요! 심리 전문가들은 이 분이 허구 세계를 진짜라고 믿는 '리플리 증후군'이 결합된 프레퍼족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벚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 차가운 지하실에 갇혀서 '지구는 망했다'라고 굳게 믿는 오늘의 주인공을 찾아가 봤습니다. 자기만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 분을 깜짝 놀라게 해드릴 준비가 되셨나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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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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