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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4. 2020

앵초(젊은 시절과 고뇌)

겨울_2월 1일의 탄생화

사람들의 동경과 자랑으로 접하게 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을 한결같이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한결같이 글을 써낸다. 이에 질세라 한국에서는 김연수 작가가 달린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그들의 책을 겨우 한 권 남짓씩만 읽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달리는 일이란, 그리고 그만큼 글을 써내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은, 그가 비록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연수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박수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만큼의 꾸준한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 그리고 나도 박수받아 마땅한 젊은 시절이 있다.


여전히 어리긴 하지만 더 어린 시절 중 '젊은 시절'이라 칭할만한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군 복무 시절이다. 아니, 군대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만한 이야기이려나. 혈기왕성한 젊음을 어쩔 수 없이 바쳐야 하는 시절 따위의 표현처럼 말이다. 


어쨌든 내 군대 시절의 이야기는 딱히 군대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흔히 아는 형태의 군대 생활을 하지 않은 탓이다. 누구처럼 혹한기 훈련을 간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말상초의 이별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총은 훈련병 때나 겨우 한 번 만져 보았을 뿐이고, 해군이었지만 배도 타지 않았다. 게다가 근무지는 사무실 안이었다. 일반적인 군인들과 다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란, 상대적으로 편한 생활을 했을지라도 꽤나 많은 양의 고뇌를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고뇌를 달리는 것으로 풀어헤쳤다. 하루에 1시간씩. 그 시간 동안 10km를 매일 달리면서.


처음에는 한 번에 3km조차도 쉬이 달릴 수 없었다. 평발이었고, 입대 직전에 찌운 술살로 인해 체력은 바닥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매일 달리기로 결심했다. 전역하기 전에 행군과 비슷한, 그러나 군 밖에서 하기로 한 대장정을 계획한 것도 달리기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대를 4바퀴 돌면 딱 10km였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4바퀴를 돌기로 했다. 같이 달리던 동기가 먼저 앞서 나가거나, 뒤처지더라도 우선은 그냥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다. 많이 힘들어서 속도가 줄더라도, 그 속도가 거의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 일지라도 달리는 시늉을 했다. 팔을 휘휘 휘젓고,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4바퀴를 모두 돌 때까지는 무조건 달린다. 이것이 내 젊은 시절의 목표였다. 그러면 딱 1시간. 1시간만큼이 지나 있었다.


무진장 더운 여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10km를 달리러 나섰다.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부대 중간중간 안내 요원이 배치되었다. 그중 동기도 한 명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동기와 인사를 했다. 한 바퀴를 돌고서 다시 동기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3바퀴째 동기에게 인사를 하니, 동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4바퀴. 멀리서부터 동기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손뼉을 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만큼이나 뛰는 거야? 대단하다, 대단해.
이 더운 날에 쉬지도 않고 계속 뛰네." 


내 젊은 시절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군대에서 보낸 젊은 시절은,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다음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했고, 팔을 휘휘 내젓는 것에 집중했다. 4바퀴, 10km가 마무리되는 지점까지 뛰는 척이라도 하면 하루치의 고뇌는 남의 일이었다. 그 시절의 고뇌라고 해봐야 '전역이 언제 오려나.'처럼 시간만 지나면 해결되는 정도였긴 하지만 말이다.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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