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회사 책장에 꽂힌 출간된 책들을 정리했다. 1999년에 처음으로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기점으로, 저번 주에 나온 신간까지 연도별로 나열했다. 1999년에 처음 출간한 책은 초판을 찍은 뒤 지금까지 100쇄 이상을 한 책이다. 심지어 그 책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읽힌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출간한 책도 50쇄 이상을 했고, 지금도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그뿐 아니라 약 90만 명의 손에 가닿은 책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책들은 그러했다. 최소한 50쇄 이상을 한 그런 책들, 대표적인 책들. 출판사의 스테디셀러. 물론 책을 기획할 때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나도 언젠가는 100쇄를 찍는 책을 기획하고 싶어.’ 포부가 큰 편이다. 요즘에는 1쇄만 나가도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 어느 출판사는 아예 처음부터 1쇄만을 목표로 출간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100쇄는 무슨.
‘어, 이런 책도 있었네.’ 책을 정리하다 문득 ‘절판’인 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품절’이 아니라 ‘절판’이다. ‘절판’이라는 것은 더 이상 책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이 절판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저자가 사고를 쳤다거나, 아니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거나. 대부분 둘 중 하나다. 내 눈에 보인 책은 ‘절판된 책’이었다. ‘그래, 모든 책이 다 스테디셀러는 아니구나. 스테디셀러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구나.’
출판사에는 매출을 담당해 주는 메인 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서브 책도 있다. 메인 책이 매출을 견인해 준다면, 서브 책은 존재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창고값 정도만 하는 책들도 있고.. 하지만 서브 책들이 없다면, 내 생각에 메인 책도 없다. 서브 책이 있기에 메인 책이 있을 수 있고, 서브 책이 있기에 메인 책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책장에 꽂힌 책들이 ‘다른 사람의 삶’처럼 느껴졌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대개 처음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베스트셀러가 눈에 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실패도 있고 눈물도 있다.
나도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 글들을 쓰고, 또한 편집자로서 이런저런 책들을 만들었지만, 아직 메인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어쩌면 서브 정도의 글들, 서브 정도의 책들을 만들어 온 듯하다. 심지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그렇다. 이 글은 내가 봐도 대단한 글이 아니다. 소소하고, 사소하고, 사적인, 그리 거창하지 않은, 그 정도의 글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루어낸 것이 없다고 슬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라를 구한 위인전을 보고 자라서인지, 아니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조언을 들어서인지, 왜인지 우리는 죽어서 가죽 대신 이름이라도 남겨야만 할 것 같다. 대단한 사람, 세상을 구하는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사람. 그래, 나는 믿는다. 어쩌면 작은 일에 충성을 하다 보면 큰일을 맡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서브 책들을 만들다 보면 메인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인생의 묘미는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다. 오늘 내 눈에 보인 건 대단한 책들이 아니라 작고 소중한, 숨어 있는 그 노력과 실패들, 좌절과 절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