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일거리가 없을 때 생존 방법

현직 방송작가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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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보면 일거리가 있을 땐 너무 있고 없을 땐 너무 없는, 농번기와 농한기를 퐁당퐁당 건너기 마련입니다. 그런 탓에 프리랜서들은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거나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렵기로 따지자면 농한기가 더 무섭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들이받고 싶은 욕구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지만, 농한기를 생각하면 문제제기조차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농한기를 대비하겠다고 일이 몰려들 때 전부 받아버리면, 이 또한 비극으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번 돈을 몽땅 병원비로 날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명심하셔야 합니다. 프리랜서는 몸뚱이로 벌어먹는 직업입니다. 건강과 통장의 상태를 균형있게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하여 딱히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작가들, 특히 교양방송 작가들의 생사여탈권은 오롯이 피디의 손아귀에 놓여있기 때문에 농한기를 걱정하는만큼 그들에게 을로 잡혀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목줄을 잡혀살기 때문입니다. 당장 다음 번 계약이 그들의 손에 달려있고, 다른 피디에게 소개를 해주는 것도 그들입니다. 내 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하는 보조작가 사단을 거느린 우주 최강 메인작가가 아니라면, 혹은 반 년쯤 놀고 먹어도 별 타격이 없는 묵직한 잔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부당해도 웃으면서 네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디오를 일년 넘게 같이 하던 피디가 설 전날 해고 통보를 했을 때도, 원고 건수를 절반 이상 줄이면서 사전에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았을 때도, 더러우니 내 당장 때려치마! 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길이지만, 농한기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남은 한 달의 원고도, 절반도 안 되는 원고도 정성을 다해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방송작가를 평생의 을로 만드는 것이, 언제나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농한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습니다. 일거리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 통장도, 건강도, 자존감도, 모두 균형있게 지킬 수 있는 마법같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 17
일이 없을 때는 쿠팡 일용직을 활용해라!



프리랜서가 농한기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굴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 한 가지도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함께 굴려도 무리가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손에 쥐기란 꿈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은 한 가지 일만 하고 있다가 필연적으로 농한기를 맞고 맙니다. 그리고 다음 일거리를 구할 때까지, 그 애매한 기간에 잠깐 끼워넣기 가장 적당한 일이 바로 쿠팡 일용직입니다.


왜 쿠팡 일용직인가?

사실 시급으로 치면 이케아 아르바이트가 가성비가 조금 높습니다. 이케아에도 주 25시간짜리 단기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시급이 9,700원입니다. 반면 쿠팡 시급은 9,160원입니다. 쿠팡에서 더 힘든 업무를 하면 9,640원의 시급을 받을 순 있으나 허리를 조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방송작가들은 직업의 특성상 최하급의 체력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몇 백원 더 받자고 힘든 일 하지 마시고 덜 힘든 업무를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체력이 없는 사람이 힘든 일을 했다가는 본인이 힘든 것보다도 주변에 상당한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9,160원의 시급을 기준으로 한다면 쿠팡보다는 이케아 알바가 500원 정도 시급이 더 높습니다. 거기다 이케아는 이케아입니다. 가구도 팔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즈베리 초코케익도 파는 꿈의 동산 이케아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프리랜서가 단기간 일하기엔 쿠팡이 이케아보다 좋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 원하는 날짜에만 근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프리랜서에게 굉장한 장점입니다. 프리랜서는 언제 다시 일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든 장기간 매어 있으면 곤란합니다.


둘, 자존심 상할 일이 없다.

이 점은 단기 일자리를 구하는 모든 구직자들에게 굉장한 장점입니다. 서른 이상의 나이대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바로 아는 사람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경우입니다. 계산대에서 열심히 바코드를 찍고 있는데 "너 혹시.. 노파 아니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10년만에 만난 얄미운 동창이더라.. 아니면 이혼한 전 시가족이더라.. 하는 등의 장면을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마트 계산원, 편의점 알바, 그리고 이케아 직원같은 서비스직종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 이렇게 자존심이 상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쿠팡은 다릅니다. 쿠팡 일용직은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손님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대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일당 벌이를 하러 온 사람입니다. 관리자라고 해봤자 나보다 시급 5백원 정도 더 받는 사람입니다. 누가 누구를 아래로 내려다 본다든가, 아는 사람이 손님으로 와서 혼자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든가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저 바코드하고만 씨름하면 됩니다.


셋, 점심과 셔틀이 무료로 제공됩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최곱니다. 공짜밥에 맛 운운하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좋기만 한 직업이 있을까요?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힘듭니다. 그것도 ㅈㄴ 힘듭니다. 프리랜서가 근로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몸으로 벌어먹는 직업이라면, 쿠팡 일용직은 나의 관절과 척추, 근력으로 벌어먹는 직업입니다. 마트 캐셔, 편의점 알바, 이케아 직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단기 알바 중에 몸이 안 힘든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쿠팡이 더 좋은 이유는, 최소한 입 근육은 안 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손님들에게 친절한 미소와 말을 베풀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양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일을 하나 안 하나 감시를 한다든가, 농땡이를 피운다고 관리자가 꼽을 주든가, 하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바코드를 잘못 찍으면 관리자가 와서 지적을 하지만, 그뿐입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쿠팡과 같은 거대 물류업체에서는 직원들이 업무량을 많이 소화하는 것보다 업무의 오류를 줄이는 편이 훨씬 손실이 적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일하다가 바코드를 제대로 안 찍어서 상품을 엉뚱한데 진열하면, 그 상품은 전산상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만일 관리자도 그 물건을 찾아내지 못하면 20만평 되는 물류센터 안에서 그 물건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인력의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 일용직들이니, 범인을 색출하여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쿠팡은 일을 조금 덜 시키더라도 차라리 오류를 줄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빨리 하라고 채근하는 일이 없습니다. 착한 기업이라서가 아니라 이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선과 결합한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프리랜서가 왜 쿠팡 일용직과 친하게 지내야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구체적인 지원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쿠팡 일용직 지원하는 방법

알바몬이나 사람인 같은 채용 사이트에도 쿠팡 일용직이 올라오긴 하지만, 쿠팡에 지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쿠펀치' 앱을 다운받는 겁니다. 출퇴근 확인부터 급여 정산까지, 모두 이 앱을 통해 관리되기때문에 쿠팡 일용직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필수적으로 이 앱을 다운받아야 합니다.


앱을 작동시키면 처음에 이런 화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 상단에 줄 세개 표시를 누른 후 '나의 스케줄'을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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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오는데, 하단의 신규스케줄 추가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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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렇게 일주일치의 근무 가능 일정이 나옵니다. 그 중 파란색으로 활성화된 날짜를 골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물류센터와 교대 시간, 그리고 셔틀을 탈 버스 노선을 선택하면 됩니다. 물류센터의 위치와 버스 노선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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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교대 버튼을 누르면 Hub라고 쓰인 선택지도 보일텐데, 이것이 바로 시급 500원 더 주고 허리를 조진다는 '더 힘든' 작업입니다. 하지만 처음 할 때는 자동으로 '입고'가 선택되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물류센터에는 자차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버스노선 버튼에서 자차를 누르시면 됩니다. 참고로 차가 있으면 그냥 운전해 가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근무 시작이 8신데, 셔틀을 타려면 6시 30분까지는 정거정에 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거장 위치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7시 전에는 승차를 합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이동을 하니 도착 시간 또한 이릅니다. 대략 7시 20분 정도면 도착을 합니다. 즉 8시에 근무를 하기 위해 5시에 일어나 6시 반에 차를 타 7시 20분부터 대기하는, 소름돋는 비효율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니 차가 있다면 운전해서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버스노선 선택까지 마쳤다면, 다음 화면에서 어떤 작업을 할지 선택합니다. 처음 지원을 하신다면 입고만 나올 것이고 두 번째부터는 TO 상황에 따라 입고, 집품, 출고, ICQA(검수)의 업무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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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분이 무엇을 무엇을 선택하든, 최종 업무는 현장상황에 따라 분배됩니다. 물론 아예 시급이 다른 업무로 보내지는 않으나, 같은 시급의 업무 안에서도 약간의 강도 차이는 있습니다. 입고보다는 출고와 집품이 좀 더 힘들고, ICQA(재고 확인) 가장 편하다는 것이 정평입니다.


작업을 선택한 후 하단의 제출을 누르면 아래처럼 나의 스케줄에 신청한 내역이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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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기중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원 신청을 했다고 바로 채용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채용 여부는 작업 전날 저녁 5시에서 6시 사이에 카톡으로 연락이 옵니다. 카톡이 하나만 왔다면 채용이 안 된 것이고, 여러 개가 왔다면 됐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쿠팡 일용직 후기


1. 셔틀 타기

처음 가면 정류장 표시도 없는데 엉뚱한 데 서 있진 않을까, 조바심이 드실텐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가보면 이미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엔 너무 일찍 나갔더니 아주머니 한 분만 정류장으로 추정되는 곳에 서 계셨습니다. 긴가민가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혹시 쿠팡?' 하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쿠팡!'하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뭔가 비밀요원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제 뒤로도 금방 줄이 늘어섰습니다. 쿠팡 일용직은 대학생부터 환갑을 앞둔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말 그대로 국민 알바입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도 모르고 계셨다면 방송작가가 너무 트렌드에 뒤처져 계신 겁니다.


2. 첫 작업

처음 가면 두시간 정도 교육을 받습니다. 그 후에 조 별로 작업장에 배정이 되는데 익히 들으셨듯, 핸드폰은 소지할 수 없습니다. 사물함에 개인 물품을 보관한 후 작업장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 전자기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다시 사물함에 가서 놓고와야 합니다. 그러면 열댓명의 사람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워치도 안 됩니다. 물병과(겨울에는 텀블러도 가능) 내부가 비치는 비닐 가방은 소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첫 작업이 시작됐는데, 저는 입고가 아닌 출고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무엇을 선택했든지 간에 실제 업무는 그날 작업장 상황에 따라 배정된다고 말씀드렸듯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입고에 빈자리가 없어서 출고 업무인 집품으로 배정이 됐던 것입니다. 두 시간 동안 실컷 입고에 관한 교육을 받았는데 엉뚱한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복불복입니다. 물론 집품이라고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카트 위에 토트라고 불리는 바구니를 싣고 다니며 진열장에서 상품을 찾아 바구니 안에 담는 작업입니다. 초단순 작업이었으나, 저는 무척 고됐습니다. 마흔이 가깝도록 평생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더니 어깨고 허리고 성한 구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계속 배가 고팠습니다. 나름 육체 노동을 대비한다고 5시에 일어나 아침도 든든히 먹었는데, 그 바람에 머리감는 것도 포기했는데, 몸쓰는 일을 하면 금방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루종일 서서 움직여야 하니, 의자 위에 몸을 구겨넣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하지만 센터 안에는 기껏해야 음료수 자판기밖에 없고 그나마도 작업장 안에는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하면서 소소하게 까먹을 수 있는 단백질바나 초코렛을 챙겨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챙겨간 초콜렛을 물류센터에서 다루는 상품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초콜렛 포장을 까서 비닐팩에 넣어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검문받을 때 간식까지 일일이 다 꺼내 놓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주머니 깊숙이 찔러놓고 들어가세요)


저는 배고프면 울화가 치미는 성격이라 첫날에도 약과를 몇 개 챙겨갔는데, 여기서 사무직으로 일할 때와 가장 큰 차이를 느꼈습니다. 책상 앞에서 일할 때는 아무 때나 따뜻한 커피를 타 마시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탕비실을 오가며 군것질을 입에 달며 일을 할 수 있는데, 블루칼라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적당한 때에 눈치껏 까먹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숨어서 먹을 필욘 없으나 당당한 쳐묵쳐묵도 안 된다는 것이 어딘지 한편으론 서럽고 한편으론 스릴 넘칩니다.


3. 점심시간

11시 40분쯤 되면 관리자가 점심을 먹으러 가라고 합니다. 식당은 3개 층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아무데나 골라가면 됩니다. 맛은 없으나 배가 고프니 많이 먹습니다. 그러나 너무 배가 고프다고 너무 많이 욱여넣은 탓에 오후 내 속이 더부룩하여 괴로웠습니다. 구내식당 돈까스는 질이 안 좋아 속 안 좋은 사람은 두 장 먹는 거 아닌데, 탐욕에 눈이 어두워 그리했더니 역시 과보를 받았습니다. 첫날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적당히 드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식사시간에는 핸드폰을 소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드리는 꿀팁 한 가지!
쿠팡에 가실 때는 봉지커피와 텀블러를 꼭 챙겨가세요!



밥을 걸지게 먹었으니 커피가 무척 고픈데, 쿠팡 자판기에는 냉커피밖에 없어서(센터마다 다릅니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했습니다. 늦가을부터 물류센터는 내부도 무척 추워 차마 냉커피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쿠팡 고인물들을 보니 집에서 종이컵과 봉지커피를 챙겨와 정수기 물에 타서 뜨끈하게 위장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맥심 커피가 탐이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작업장에도 텀블러 반입이 가능하니 환경을 생각해서 텀블러와 인스턴트 커피 몇 봉을 챙겨오시길 바랍니다. 꿀같은 점심시간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오후 근무

센터마다 주간 근무시간이 다른데, 제가 간 곳은 8시부터 18시 근무기 때문에 오후가 무척 길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 어디에서나 시간은 생산자의 가장 큰 적이지만, 이곳은 정반대의 의미로 시간이 적입니다. 도대체가 시간이 가질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강탈당한 곳에서 단순노동을 하면 시간은 마치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카트 하나에 보통 바구니 9개가 올라가는데, 그걸 다 채워도 고작 30분이 지나가 있을 뿐입니다. 바깥세상에서는 그렇게 없어서 모자라던 시간이 이곳에선 구토가 날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내가 지금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몸부림을 치며 간신히 3시를 넘기면 그때부턴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삐걱입니다. 4시부턴 그저 집 생각만 납니다. 워낙에 체력이 약한 편이기도 하지만 첫날이라 열정 과다로 오전에 오버해서 일한 탓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관리자가 와서 천천히 하시라고, 빨리 하지 마시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을 정도입니다. 처음에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수도 많고 금방 나가떨어집니다.


5시에, 더는 견딜 수 없어진 저는 아예 진열장 구석에 사다리 끌고 가 머리를 쳐박고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뭐라고 하면 한시간 시급을 깎으라고 할 참이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사원이나 몸을 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전에 너무 많은 실수를 해서 차라리 아무 것도 안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어서 그런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고마웠습니다. 바로 다음날 입금되는 일용직 일급의 맛도 꿀이었습니다. 매우 고됐지만, 쿠팡 일용직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평

방송작가로 일하면 생계의 위협때문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는데, 이번에 쿠팡 일용직을 하면서 세상에는 수 많은 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남보기에 멋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겠다는 마음을 버리면, 프리랜서로 살아도 굶어죽을 일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류센터에서도, 인력사무소에서도 매일매일 성실하게 제 입을 건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세상 사람들처럼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됐습니다. 노가다하시는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고맙게 느꼈습니다.


그러니, 글 쓰느라, 그림 그리느라, 음악하느라
생계가 곤란해진 예술 꿈나무 여러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쿠팡 가서 돈도 벌고 몸도 움직여보세요.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 무섭지 않게 여겨질 겁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게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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