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5시간전

지역신문 기념식은 원래 혼자 가는 겁니다

[노파글쓰기] 고양신문 50주년에도 불러주십쇼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얼마 전에 고양신문 창간 35주년 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기자님이 올 수 있냐고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행사는 미리 잡힌 일정을 취소하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일상에선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1. 독보적 감성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역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두색 테이블보와 검은색 사무실 의자, 그리고 경음악이 자아내는 성공한 어르신의 칠순 잔치 같은 감성!


저녁 식사로는 샌드위치 반쪽과 떡 두 개가 제공되고, 축하주로는 직접 빚은 막걸리를 소주잔으로 내놓는 기백!


풍경 안의 모든 요소가 제 빈약한 상상력은 감히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도 다들 아찔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어르신이 꿋꿋하게 긴 축사를 이어나가면 뒤에 계신 어르신은 트럼프 모자를 쓰고 신문을 활짝 펼쳐 읽거나(당연히 고양신문일 겁니다) 투쟁 조끼를 입고 동에서 서로, 강당을 기세 좋게 가로지릅니다.


어떤 선생님은 사람들이 안 마신 막걸리 잔을 분주하게 모아다가 야무지게 막걸리 한 병을 채우고 계십니다.

최곱니다.


2. 넘볼 수 없는 패션

지역신문 행사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하는 것이 바로 패션입니다.


이런 자리에 양복은 세상 지루한 옷입니다. 개량 한복에 흰 수염은 이젠 익숙하고, 현수막과 맞춘듯한 하늘색 갭 티셔츠나 하와이언 셔츠 정도는 입어줘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와이언 셔츠도 그냥 입으면 안 됩니다. 아래쪽 단추를 세 개 정도는 풀어놓아 걸을 때마다 배가 드러나야 합니다.


거기에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써 주면, 옷 좀 입을 줄 아는 양반이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겁니다.

쉽지 않습니다.


3. 혼자 잘 노는 중입니다

지루한 옷을 입고 온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구석에서 박스를 뒤져 도시락을 까먹고, 방울토마토를 우물거리며 우크라이나에서 온 세르게이 씨의 연주를 감상하다가 아름다운 시민분의 수상엔 힘껏 박수도 쳤습니다.



제가 혼자 그러고 있는 것이 쓸쓸해 보였는지 기자님 한 분이 오셔서 “작가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팬이에요” 하시는데, 그 말에 오히려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결혼식도 혼자 가는 사람인지라, 가서 코스 요리 다 먹고 와인도 세잔 씩 마시고 오는 사람인지라, 괜찮습니다. 그냥 혼자 두셔도 됩니다.


혼자 있어야 이 진귀한 풍경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살뜰히 구경할 수 있기에 이런 자리엔 혼자 오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아 손을 흔들며 기념사진까지 찍고 온 겁니다.  사진은 다음날 고양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밤이었습니다.


고양신문의 창간 3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0주년에도, 50주년에도 계속 초대해주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512134889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고양신문 #지역신문 #혼자놀기


 





이전 06화 최저소득자인 나는 왜 집을 샀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