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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n 23. 2024

아들 신화의 정체

[노파의 글쓰기] <꿈꾸는 인큐베이터>, 박완서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1993


인터넷에서 한 조각의 글을 보았다.


“그 착하고 유순한 며느리가 이렇게 달라지기 시작한 게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라는 걸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너 아들 낳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냐? 라고 맞대놓고 비아냥거릴 적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겁날 거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안하무인으로 굴수록 그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장손을 낳아준 맏며느리가 아닌가. 아들을 낳음으로써 나는 내가 남자가 된 것처럼 당당해졌다. 정말이지 나는 그들 앞에서 더는 여자 노릇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들 생각만 하면 나는 겁날 게 없었다. 아들은 나에게 있어서 후천적인 남성성기였다.”


글을 올린 사람은 박완서가 한국의 아들 엄마의 정서를 대변한다며 화를 냈는데, 그건 바보 같은 소리다.


 나 역시 박완서의 소설을 잘 모르지만, 저런 식으로 대사 한 토막을 떼어다 놓고 그것을 마치 작가 개인의 신념으로 치부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를 전시하는 일 밖에 안 된다. 작가는 저런 생각을 가진 인물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게 이 대사는, 그동안 우리 엄마와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아들 타령을 하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나는 당장 소설의 전문이 읽고 싶어졌다. 박완서라는 작가가 해석한, 엄마들의 ‘지독한 아들 사랑’의 전말이 궁금했다.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에게 아들을 낳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말 그대로 죄인 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그래서 딸만 둘을 낳은 나의 어머니는 죄인 취급을 받았다.


시어머니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 아닌데도 할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할머니로서는 손자 타령까지 할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누구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나?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받았다.

아들이 있는 동네 여자들로부터도 받았고, 나의 선생님으로부터도 받았다(고등학교 때 내 딸기 양말을 본 담임 선생님은, 누가 딸딸이 집 아니랄까봐 양말도 딸기 양말을 신겼네? 했다. 그는 아들만 둘을 낳은 여자였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지독하게 아들 타령을 했다. 말끝마다 아들아들아들... 공부를 썩 잘하지 않은 언니에게는 역시 기집년이라 공부를 안 하는 거라고 했고,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내게는 저년이 왜 아들로 태어나지 않아서...하며 역시 아들을 아쉬워했다.


탄생 과정도 수월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연년생이고 생일도 이틀 차이다. 즉 엄마가 언니를 낳은 후 뼈도 제대로 붙지 않았을 때부터 관계를 했고, 그 결과 내가 수태된 것인데, 하필 또 딸이었던지라, 엄마는 이번에도 죄인의 얼굴로 물어봤을 것이다.


“지울까요?”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허세가 심한 사람이라 “그럼 안 되지!” 하고 나를 살릴 것을 명하였으나,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자라는 내내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기집애가 잘 먹는 게 꼴 보기 싫다며 젖병을 뺏어버리는 일도 많았고, 쑥쑥 커도 기집년이, 비실비실 해도 기집년이, 뭘 해도 기집년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기에 나의 유년시절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상상 속 아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피를 말리는 날들이었다.


그럼 나는 사탄도 울고 갈 “지울까요?”와 친자식 “젖병 뺏기” 일화를 어떻게 알았을까?

친절하게도 아버지가 직접 이야기를 해준 덕분이다. 그 말을 전한 데에는, 내가 널 살려준 은인이니 고마워해라, 라는 바람이 깔려있다.


젖병 뺏기 일화는 내가 하도 마르고 키가 안 크니 왜 그런가 하여, 본인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 간 끝에 발견해 낸 사실이다.


물론 이런 말들을 듣고 자라면, 자식 입장에서도 자아가 꽤나 패륜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아들이었으면 아빤 나한테 매일 두들겨 맞았어” 라든가 “그때 그냥 지우지 그랬어?”와 같은 말들을, 사춘기라는 핑계를 대고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그렇다, 딸 부모가 아들 상성을 하는 순간 가정의 화목 같은 건, 물 건너간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우리 가족이 무슨 세상에 둘도 없는 패륜 가족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과도한 애착이 문제라면 문제지, 아버지가 나를 정말 미워해서, 혹은 내가 정말 아빠를 싫어해서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입이 거칠 뿐이다. 특히 아버지가 말을 함부로 하고, 내가 그런 아버지를 탁했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내게 ‘아들 사랑’의 정체는 늘 큰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대체 아들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자기 자식을 이렇게 상처 주면서까지 부모는 아들을 원하는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에 할머니를 모신 자식은  지방에서 어렵게 사는 딸이었다. 외가도 마찬가지다. 합쳐서 일곱 명이나 되는 양가의 아들 중 누구도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았기에 모두 딸에게 노후를 의탁해야 했다.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92년도에 쓰인 작품이다.

그해 박완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고, 아들을 앞세운 지는 4년째 되는 해였다. 아들은 박완서가 네 명의 딸을 낳고 마지막에 얻은 자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물다섯 되던 해에 병원 레지던트로 일하던 중 과로로 사망했다.


그렇기에 박완서라면, 한국의 부모들이 갖는 아들에 대한 이런 병적인 애착을, 애착의 진짜 이유를, 누구보다도 진실되게 말해주리라고 믿었다.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딸 둘을 낳고 마지막에 간신히 아들을 낳은, 마흔 줄의 여성의 이야기다.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은, 우리가 ‘아들 엄마’라고 할 때 흔히 아는 그 모습을, 조금 더 과장해서 보여준다. 딸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든가, 은근하게 아들 하나 낳으라고 바람을 놓는 식으로.


“나는 이 세상에 아들이 있고 없고 하고 인생의 행/불행하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남자를 만난 게 대단히 곤혹스럽고도 기분이 나빴다. 뭐 저런 족속이 다 있나 재수 옴 붙었다 싶으면서도 그 남자를 행복한 채로 놓아주기가 싫었다. 그것은 분명히 거짓 행복이고, 거짓은 깨부숴야 한다는 사명감이 대단한 정의감처럼 치뻗쳤다.”


그녀의 이런 비정상적인 사명감에는,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셋째는 무조건 아들을 낳기 위해 자신의 딸을 살해했다는 죄의식.


그 살해의 전 과정에는 시모와 시누이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그들은 며느리이자 올케의 손을 잡고 소파수술에 도사라는 의사를 찾아가, 수술 의자 양쪽에서 주인공의 손을 하나씩 잡고는 자신의 손녀딸이자 조카가 살해되는 과정을 기꺼이 수행한 것이다.


“세상 참 좋아졌지 뭐냐? 옛날 같으면 꼼짝없이 또 딸을 낳을 뻔했구나.”


쉽사리 손녀딸을 살해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의 의미였다.


그러나 시모나 시누와 달리 자기 뱃속에서 직접 자기 자식을 긁어낸 주인공은 내면 깊숙이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아들 엄마가 된 그녀는 시모와 시누에게 못되게 굴고, 아들에겐 과도하게 집착하며, 딸만 있는데도 행복하다는 남자는 보는 것조차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남편은 “같이 야구장 갈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 한마디로 너무나 간편하게, 세 여자가 딸을 살해할 작당을 세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편도 마음 깊숙이 미워하지만, 사실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런 지독한 리얼리즘을 한편의 이야기로 펼쳐 보이기 위해 작가는 대체 자신의 아픔을 얼마나 깊숙이 헤집어 본 것일까?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한 자기 성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박완서가 말하는 병적인 아들 선호의 이유, 그것은 “상속권”이다. 즉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자신의 집과 재산을 물려줄 적장자로서 아들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한 집안의 대를 이어 나가는 것의 실체는, 사실상 아들이 아닌 ‘돈’이라는 뜻이다.


그랬을 때, 제목의 ‘인큐베이터’는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서 여성의 몸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돈을 이어가게 할 매체로서 남성의 몸 또한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는 역시 무시무시한 작가였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버지의 아들 타령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 우리 집엔 물려줄 재산도, 물려받을 아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대는 언니와 내가 살뜰히 끊어먹었다. 그까짓 대, 이어서 무얼 하나?


그리하여 요즘 나의 가족은, 일찍이 누려본 적 없던 가정의 화목함이라는 것을 최대치로 경험하는 중이다. 아빠는 나름의 방식으로 지난날의 업보를 열심히 닦는 중이고, 나 역시 그간 몹쓸 짓을 많이 저지른 탓에 딱히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물려줄 재산이 없고 물려받을 자손이 없는 궁지, 그 궁지의 홀가분함이 가져다준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우리는 나이가 들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했으나 삶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담금질을 당하고 나니, 이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이해의 여력을 갖게 됐다. 역시 사람이 마흔까지는 살아봐야 한다. 쉰도 지내고 환갑도 살아보면 더 많은 것들이 이해되겠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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