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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Sep 02. 2024

일하기 싫은 거지가 환경에 이롭다

[노파 서평]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나의 5년 프로젝트 : 꿀벌에게 의지하는 삶


어떤 책은 힘이 아주 세서, 읽는 사람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내겐 이 책이 그랬다.


요즘 나는 저전력, 저소비로 살 방안을 구체적으로 궁리하는 중이다. 마흔다섯에는 산골로 들어가 최소한의 전기와 소비로 살아보려고 5년짜리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먼저 문명은, 냉장고와 세탁기와 노트북, 가스보일러와 가스레인지. 이 다섯 개만 사용한다.


반려동물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들이고, 반려 노예로는 꿀벌을 키운다. 그러면 꿀벌이 부지런히 꿀을 모아 전기세도 내고,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릴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여 주말 내내 양봉 귀농을 알아봤더니 요즘 꿀벌 폐사가 심각하다고 한다. 치명적이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데, 그조차 즐겁다.


나의 이 모든 즐거운 계획의 시작점이 바로 박정미의 <0원으로 사는 삶>이다.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박정미는 워킹홀리데이로 영국에 갔다가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잘리게 된다.


돈이 자신의 존재를 흔드는 이 중차대한 순간에 그는 기막힌 결심을 한다. 아예 돈 없이 살기로 한 것! 그것도 세계 최고의 물가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말이다.


내게는 박정미의 이 결심이 마치 돈과 생존 사이에서 벌이는 세기의 대결처럼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박정미의 완벽한 승리였다.


도시에서는 스쿼팅(빈집 점유)과 스킵 다이빙(폐기 음식 구하기)을 하고, 시골에서는 우핑(생태 마을에서 노동 교환)과 레인보우 개더링(히피 모임) 등을 하면서 박정미는 무려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며 0원 살기에 성공한다.



물낭비와 히치하이킹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도 생존 능력이 꽤 높은 편인데 이건 안 되겠다, 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씻는 문제 때문이다.


0원 살기 생활을 하려면, 매일 샤워하는 것을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샤워를 못 한다고 했다.


나는 여름철엔 하루에 최소 네 번은 샤워하는 사람이다. 에어컨을 안 틀어서 쥐똥만큼 환경보호를 한 후 물 낭비로 전부 도로 아미타불을 만든다.


1일 1샤워도 엄청난 도전인데 한 달 1샤워라니!

저항하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더불어 나는 히치하이킹처럼 위험천만한 일도 절대 할 수 없다. 아마 네 번째 히치하이킹 쯤에서 나는 살인자가 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물값과 버스값 정도는 벌어야겠다.


이런 생각들, 즉 내가 환경을 위해 견딜 수 있는 한계선은 어디쯤이고 그 생활을 위해 필요한 돈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일하기 싫은 거지가 환경에 더 이롭다

참고로 내가 처음 저전력 저소비의 삶을 생각한 이유는 일하기 싫어서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살려면 최소한의 수입으로 살아야 하니 안 쓰고 아끼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의도치 않게 환경보호라는 연쇄 효과를 낳았다.


나의 궁상이 환경보호로 연결되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말 친환경주의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을뿐이다.


역시 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친환경주의자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은 진리다. 그리고 환경에는 반듯한 사회인보다 거지와 놈팽이가 더 이롭다.



나만의 모험 시작하기


지금까지는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이 최고의 모험기였는데, 이 책을 읽은 후로 바뀌었다.


<0원으로 사는 삶>은 내가 본 최고의 모험기이고, 박정미는 내가 들어본 중 최고로 생존 능력이 높은 사람이다.


나도 나만의 모험을 시작해야겠다. <0원으로 사는 삶> 덕분에 나의 40대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56718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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