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Sep 05. 2024

생리컵, 진짜 좋을까?

[노파에세이] 친환경 제품 이야기 2. 생리대




* 예민한 몸

앞선 글에서 친환경 거지라는 말로 의식 있는 척 겸양을 떨었으나 실은 내가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순전히 나 때문이다.


나의 예민한 몸뚱이가 환경에 해로운 것들에 죄다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경과 나는 진정한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마는, 환경과 나 사이의 결속력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여 지구에 유해 물질이  지금보다 더 많아진다면 나는 필시 남들보다 일찍 죽을 것이다. 별로 억울하진 않다. 내가 죽으면 그 뒤를 이어 바로 건강한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므로.


그러므로 내가 지금 천연제품을 만들고 친환경 삶을 산다고 설치는 것은 다 인류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나를 경배해라.


* 생리컵을 써볼까..

오늘은 친환경 제품 두 번째 이야기, 생리컵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흐르고 새는 몸의 선두 주자인 나는 이 분야에 있어서 얼리어답터라고 할 수 있다. 생리컵도 이미 8년 전에 사두었다. 물론 이번에도 지구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 몸이 화학제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생리대와 탐폰의 독성을 견디지 못하여 환경에도 좋고 몸에도 좋다는 생리컵을 샀던 것이나, 안타깝게도 생리컵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생리컵을 써볼까, 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는 게 좋겠다.


* 생리컵

일단 생리컵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마치 치실처럼 오랜 숙련 기간을 요한다.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놀랍도록 불쾌한 경험이어서 나는 두어 번 만에 포기했다.


착용하고 뺄 때마다 마치 내가 외과의사가 된 기분이 드는데, 문제는 환자 또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돌팔이 의사가 마취도 안 하고 장기를 적출하는 것 같은 공포와 불쾌감 속에 생리컵을 포기한 게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생리컵이 아직 집에 있는 이유는 비싸게 샀기 때문이다. 두 개에 8만 원. 물 건너온 녀석이라 그렇다. 당시 한국에서 생리컵 판매는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친환경 제품은 다 비싸다. 저렴하게 사용하길 원한다면 돈이 아니라 시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무조건 오래 써야 한다.


* 생리컵 적응기

그리하여 나도 이제 때가 되었다고 느껴 다시 생리컵을 꺼냈다. 그리고 80년대생 한국인답게, 안 되면 되게 하라! 푸악! 쭈압! 하며 상당히 폭력적으로 적응 기간을 거쳤다. 4일쯤 지나니 그제야 선구자들이 말하던 신세계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굉장히 편했다.


무엇보다 쓰레기가 전혀 생기지 않았고, 면 생리대처럼 빨래 노예가 될 일도 없었다. 정말, 신세계였다.


* 몸의 반격

역시 안 되는 건 줘 패면 돼, 하며 뿌듯해하고 있는데 5일 차부터 몸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어제, 아침부터 산부인과로 오픈런을 했다.


의사는 산부인과학회에서는 위생 문제로 여전히 생리컵 사용을 반대한다고 했고, 나는 무슨 소리냐고, 내가 바로 탄현동 위생 요정이라고, 쓸 때마다 손이랑 컵이랑 비누로 얼마나 박박 닦는지 아느냐고 했다가 더 혼나고 말았다.


산성이 유지돼야 하는 곳에 염기성 비누로 씻은 걸 넣으면 어떡하냐고, 그러니깐 면역력이 떨어져서 염증이 생긴 거 아니냐며 당장 폐기하라고 했다. 


* 결론

생리컵을 쓰지 말자.

(그러나 생리컵을 수년 간 문제 없이 사용하는 황금 몸들이 있다. 그러므로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대안

미레나 시술이 더 낫다.

그러나 시술을 받아도 나처럼 불운의 아이콘들은 호르몬의 가호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 경우 자궁 적출의 방법이 있다.

그러나 자궁을 적출하면 요실금의 위험이 커져서 피냐, 오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갈림길에 서게 되므로 그냥 건드리지 않고 사는 게 낫겠다.


정 성가시면 호르몬 약(피임약)을 매일 먹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성가시긴 마찬가지다.


의의

여자의 몸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그러므로 동지들아, 완경까지 힘 내시라.

물론 막상 그날이 오면 또 다른 고통에 신음하겠지만…

뭐 어쩌겄어, 이렇게 생긴 것을.

ps. 심지어 이쪽은 진료비도, 약값도 비싸다. 그냥 면생리대를 써서 친환경 거지로 사는 것이 좋겠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572137438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친환경 #생리컵 #생리컵적응기 #미레나 #자궁적출 #면생리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